고려 말 판강릉대도호부사, 조선 초 충주 군사령관을 지낸 관료이며 황희의 아버지
| 생몰 | 1328 ~ 1402 |
| 시대 | 고려 말~조선 초 |
| 본관 | 장수 황씨 |
황군서(黃君瑞, 1328~1402)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활동한 관료로, 지금의 전북 남원 출신인 장수 황씨입니다. 아버지는 황균비, 어머니는 진주 강씨로 전합니다. 위키백과는 신라 경순왕의 사위로 전하는 시조 황경의 후손으로 설명합니다.
고려 때 판강릉대도호부사를 지냈고, 1392년 조선이 건국된 뒤에는 충주 군사령관으로 일했습니다. 1394년에는 왕명을 받아 제주에 파견되었고, 이듬해인 1395년에는 제주에서 바치던 말린 말고기 진상을 그만두도록 조정에 건의해 받아들여졌다고 전합니다.
1402년 3월 22일 74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들 황희가 조선의 명재상이 되면서 사후에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손자 황치신과 황수신이 정승에 올라 가문의 기반을 다진 인물로 평가됩니다.
1394년 황군서는 왕명으로 제주에 파견되었다고 전합니다. 이듬해 그는 제주에서 말린 말고기를 바치는 진상을 그만두도록 조정에 청해 받아들여졌다고 하는데, 이는 먼 섬 주민의 부담을 덜어 준 일로 기억됩니다. 다만 자세한 경위는 위키백과 요약 정도만 확인되며 원 사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장수 황씨 문중은 황희의 증조부 황석부를 기세조로 삼습니다. 위키백과는 황석부, 황균비, 황군서, 황희 순으로 세대를 적습니다. 황군서의 관력과 황희의 아버지라는 점 외에 다른 계보를 적는 자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황군서는 직접 정승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아들 황희가 조선의 대표적 재상이 되면서 가문의 시작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기억됩니다. 위키백과는 그가 사후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고 적습니다. 황희는 정승 자리에 24년, 영의정으로 18년을 있었다고 전하며, 손자 황수신은 1467년 영의정에 올라 부자가 2대에 걸쳐 영의정을 지냈습니다.
다만 황군서와 황희의 관계, 조상 황석부와의 세대 등은 문중 족보에 따른 것이고, 고려 말의 개인 기록은 많이 남아 있지 않아 위 내용은 위키백과와 문중 해설에서 확인되는 범위로 한정했습니다.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자료에 소재가 나오지 않음)
아들 황희를 두었고, 손자로 황치신·황보신·황수신·황직신이 이어졌습니다. 본관 장수 황씨 문서도 함께 보세요.
황희의 아버지로, 고려 말 판강릉대도호부사와 조선 초 충주 군사령관을 지낸 장수 황씨 인물입니다.
1328년에 태어나 1402년 3월 22일 74세로 세상을 떠났다고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