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때 강화도 갑곶진에서 맞서 싸우다 순절한 무신, 병조참의에 추증
| 생몰 | 1570 ~ 1637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평해 황씨 |
황선신(黃善身, 1570~1637)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평해, 자는 사수(士修)입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임진왜란 중인 1597년 무과에 급제해 훈련원정에 이르렀습니다. 평해 황씨 문과·무과 급제자 가운데 병자호란 때 순절한 대표적 무인으로 꼽힙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 청군이 강화도를 공격하자 그는 예순여덟의 노령이었음에도 초관으로서 군사 100여 명을 거느리고 갑곶진을 지켰다고 합니다. 그러나 전의를 잃은 군사들이 앞다투어 달아났고, 그 와중에 황선신은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갑곶의 방어선이 쉽게 무너지면서 강화성은 별 피해 없이 함락되었고, 봉림대군을 비롯한 많은 고위층이 청군에 사로잡혔습니다. 평해 황씨 문중의 소개 글에는 그가 중군으로 참전해 전사했다고 적혀 있어 직책 설명은 자료마다 조금 다르며, 순절했다는 사실은 일치합니다. 죽은 해도 위키백과는 1637년으로 적습니다.
그는 사후 병조참의에 추증되었고 강화의 충렬사에 제향되었습니다. 1792년에는 정조가 그의 충렬을 기려 자손들에게 벼슬을 내렸다고 전합니다.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한 사람들을 모신 충렬사는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 글의 사진은 갑곶돈대와 강화 충렬사의 현재 모습으로, 인물 사진이 아니라 관련 유적 사진입니다. 가문에서는 학자와 문신이 많이 알려진 평해 황씨에서 뚜렷한 무신 선조로 기억되는 인물입니다.
묘소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강화 충렬사에 제향되었다고 합니다.
1792년 정조가 자손들에게 벼슬을 내렸다고 전합니다.
1597년 무과에 급제해 훈련원정을 지내고 병자호란 때 강화도 갑곶진을 지키다 전사한 평해 황씨 무신입니다.
강화 충렬사에 제향되었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