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때 성균관 대사성·인수부윤을 지낸 문신, 황유정의 아들
동명이인 안내 — 같은 이름의 다른 인물:
황현(黃玹) — 구한말 시인·역사가, 《매천야록》 저자, 1910년 국권 피탈에 절명시를 남기고 순국한 지사, 호 매천
| 생몰 | 1369 ~ 1434 |
| 시대 | 조선 초기 |
| 본관 | 평해 황씨 |
황현(黃鉉)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평해이며, 한성판윤을 지낸 황유정의 아들입니다. 생몰년은 자료마다 달라 디지털영주문화대전은 1369년에 태어나 1434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하고, 위키백과 평해 황씨 항목은 1372년생으로 적고 사망 연도를 밝히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정운경의 딸이자 정도전의 누이인 봉화 정씨, 할머니는 근재 안축의 딸 순흥 안씨여서 이름난 학자 집안의 외손이기도 했습니다. 이 사이트의 장수 황씨 황현과는 다른 사람입니다.
디지털영주문화대전에 따르면 그는 1389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1393년 춘장시 문과에 급제했으며, 1407년 중시 문과에서 을과 2등으로 급제해 경승부소윤에 제수되었습니다. 이후 직예문관을 거쳐 1425년 성균관 대사성이 되었고, 1428년 인수부윤, 1430년에 다시 성균관 대사성에 제수되었습니다. 평해 황씨 문중 자료 중에는 대제학까지 올랐다고 적은 곳이 있으나, 다른 자료에서는 확인되지 않아 이 글에서는 대사성으로 적습니다.
그의 이름은 성균관 제도에 관한 건의로 남아 있습니다. 1415년에는 관리가 설날에 고향으로 돌아가 성묘할 수 있는 제도를 정하자고 요청해 윤허를 받았고, 1425년에는 유생들의 건강을 고려해 기숙사를 개량하고 건강 관리 방안을 마련하자고 건의해 실현시켰다고 합니다. 1430년에는 변계량과 함께 문과 초시의 강경 방식을 고쳐 두 시제만 뽑아 제술하게 하자고 건의했으나, 유생들이 초록집에만 의존하고 경학을 가볍게 여긴다는 비판이 이어져 뒤에 경서 강독이 다시 시행되었다고 합니다. 또 성균관 유생을 구재로 나누어 사서오경을 가르치자는 건의를 했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그를 경서에 밝고 행실이 바른 사표로 평가했다고 합니다. 묘소는 경북 영주시 문정동 서릿골에 있다고 전합니다.
경북 영주시 문정동 서릿골에 있다고 전합니다.
아버지는 황유정, 어머니는 봉화 정씨(정도전의 누이)입니다.
평해 황씨입니다. 황희의 장수 황씨 집안의 황현과는 다른 사람입니다.
세종 때 성균관 대사성과 인수부윤을 지내며 유생 기숙사 개선, 구재 교육, 문과 초시 방식 개선 등을 건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