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의 매제로 한성판윤을 지낸 문신, 호 미균, 영주 삼판서고택의 주인
| 생몰 | 1343 ~ 1421 |
| 시대 | 고려 말~조선 초 |
| 본관 | 평해 황씨 |
황유정(黃有定, 1343~1421)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걸쳐 살았던 문신으로 본관은 평해이고 호는 미균(米均)입니다. 평해 황씨 검교공파 계통으로, 성균관 사예 겸 예문관 직제학을 지낸 황근(黃瑾)과 근재 안축(安軸)의 딸 순흥 안씨 사이의 3남 1녀 가운데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세대 표기는 자료마다 7세 또는 8세로 다릅니다.
위키백과 평해 황씨 항목에 따르면 그는 열두 살이던 1355년 안동 도회에서 시를 지어 시관이 과거 응시를 권했을 만큼 재주가 뛰어났습니다. 과거에는 급제했으나 곧바로 벼슬에 나가지 않고 글 읽기를 즐겼으며, 특히 『논어』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고려 말에 판윤과 예조·공조·형조의 전서를 지냈고, 조선이 선 뒤에도 한성판윤과 같은 전서직을 다시 맡았다고 전합니다. 호의 '미(米)' 자는 백성에게 먹을 것이 하늘이라는 생각을 정치에 담으려는 뜻이었다고 풀이합니다.
그는 정운경(鄭云敬)의 딸이자 정도전의 누이인 봉화 정씨와 혼인해 정도전의 매제가 되었습니다. 정도전이 1398년 세상을 떠난 뒤에도 연좌되지 않고 관직을 이어 갔다고 소개됩니다. 말년에는 병을 이유로 경북 영주의 삼판서고택에서 지냈는데, 이 집은 처부 정운경이 사위에게 물려준 것이라고 하며, 훗날 황유정이 다시 사위 김소량의 둘째 아들인 이조판서 김담에게 물려주어 세 명의 판서가 살았다는 뜻에서 '삼판서고택'이라 부릅니다. 묘역은 경북 영주시 이산면 두월리에 있다고 전합니다. 아들 황현은 세종 때 성균관 대사성을 지냈습니다.
영주 삼판서고택은 정운경, 황유정, 김담 세 판서가 살았다는 데서 이름이 붙은 고택으로, 1961년 홍수로 허물어진 것을 2008년 영주 서천가의 구학공원에 복원했다고 전합니다.
경북 영주시 이산면 두월리 을좌지원(황분토)이라고 전합니다.
아들 황현(성균관 대사성)·황연(선성현령) 등이 이어집니다.
황유정은 정도전의 누이인 봉화 정씨와 혼인한 매제입니다.
경북 영주시에 있으며, 정운경·황유정·김담 세 판서가 살았다는 데서 이름이 붙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