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수학·국어학에 두루 밝았던 실학자, 호 이재, 『이재난고』 저자
| 생몰 | 1729 ~ 1791 |
| 시대 | 조선 후기 |
| 본관 | 평해 황씨 |
황윤석(黃胤錫, 1729~1791)은 조선 영조·정조 시대의 학자로 본관은 평해, 호는 이재(頤齋)입니다. 전북 고창군 성내면 조동리에서 태어났고, 위키백과는 그를 김원행의 제자로 특히 경학에 밝았다고 소개합니다. 어릴 때 할머니 김씨에게서 글자를 익혔고, 6세에 쉬운 글자를 맞추어 시 짓는 법을 배웠으며 9세 때에는 이미 재주가 알려졌다고 합니다. 과거 합격 시기는 자료마다 달라 위키백과는 1747년 사마시, 평해 황씨를 소개하는 신문 연재는 영조 35년인 1759년 사마시 합격이라고 적고 있어, 이 글에서는 두 설명을 함께 적습니다. 관직은 세자익위사의 익찬에 이르렀고 목천현감 등을 지냈다고 합니다.
그의 이름을 가장 널리 알린 것은 일기 『이재난고』입니다. 열 살 무렵부터 쓰기 시작한 방대한 기록으로, 원래 60책에 수고본 2책을 더해 62책이며, 이 가운데 47책의 일기가 1994년부터 2003년까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활자화되어 9책으로 간행되었습니다. 고창에서 서울까지 약 580리 길을 엿새 남짓 걸려 오간 노정과 여행, 명승과 유적을 돌아본 기록도 들어 있어 조선 후기 생활사와 지식사 연구의 자료로 쓰입니다. 『이재난고』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11호이고, 그의 생가는 전라북도 민속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저서로는 『이재유고』 25권, 『이재속고』, 『이수신편』, 『자지록』 등이 있고, 『화음방언자의해』와 『자모변』은 오늘날 국어 연구에서 좋은 자료로 쓰입니다. 『이재난고』와 『이재유고』 목판 100점은 후손이 고창군에 기탁·기증했고, 고창군은 보물 승격과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평해 황씨의 학자 선조 가운데 호남을 대표하는 인물로 꼽힙니다.
묘소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고창군 성내면 조동리에 생가가 있습니다.
후손이 『이재난고』와 『이재유고』 목판을 고창군에 기탁·기증했다고 합니다.
황윤석이 열 살 무렵부터 쓴 방대한 일기로,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11호입니다.
전북 고창군 성내면 조동리에 있으며 전라북도 민속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