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계 정씨 중시조, 숙종 때 지공거와 송나라 사은사를 거쳐 형부상서·정당문학에 오른 문신
| 생몰 | 1051 ~ 1106 |
| 시대 | 고려 중기 |
| 본관 | 초계 정씨 |
정문(鄭文, 1051~1106)은 고려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의덕(懿德), 시호는 정간(貞簡)이며, 초계 정씨의 중시조로 꼽힙니다. 시조 정배걸의 아들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1051년에 유복자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최씨이며, 다만 외조부가 처인부곡 출신이라는 점이 훗날 관직 임명에서 문제가 되었다고 전합니다. 위키백과는 생몰 연도의 월일 표기에 음력·양력 혼선이 있다고 밝히고 있어, 몰년은 1106년(음력 1105년 12월)으로 병기합니다.
문종 때 국자감시에 응시해 「군위민천부(君爲民天賦)」를 지었는데 임금이 칭찬했다고 하며, 과거에 급제해 국원공의 녹사가 되었습니다. 선종이 즉위한 뒤 직한림원 겸 사문조교로 발탁되었고, 우습유에 임명되었으나 대간의 반대로 전중내급사·지제고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이후 지개성부사를 거쳐 형부원외랑이 되었습니다.
1104년(숙종 9) 지공거로서 진사 24명을 선발했고, 같은 해 사은사로 송나라에 갔습니다. 받은 금과 비단을 수행원에게 나눠 주고 서적만 사 왔다는 일화가 있어 송나라 사람들이 청렴에 감탄했다고 합니다. 숙종 말에 형부상서·정당문학 겸 태자빈객이 되었고, 예종이 즉위한 해 검교사공·예부상서를 더했다가 병이 깊어져 집으로 돌아간 뒤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후 특진·좌복야·참지정사의 직이 내려졌다고 전합니다.
부인은 김의선(호부시랑)의 딸로 전해지며 세 아들 정복공(태중대부·형부원외랑), 정복경(시군기소감), 정복유와 딸 평상군부인 정씨를 두었습니다. 이 세 아들의 후손이 내급사공파·천호장공파·대제학공파·박사공파·대사성공파로 나뉘므로, 초계 정씨는 그를 중시조로 모십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자료에는 부친 정배걸 묘소 인근에 모친 최씨의 묘가 있다고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