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종 때 장원 급제하여 첨의평리까지 오른 고려 후기 문신, 호 상헌·시호 양헌
| 생몰 | 1251 ~ 1325 |
| 시대 | 고려 후기 |
| 본관 | 초계 정씨 |
정선(1251~1325)은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초명은 정현좌, 자는 거비, 호는 상헌, 시호는 양헌입니다. 『고려사』 열전은 초계 사람으로 지금의 합천군 쌍책면 일대 출신이라고 적었으며, 합문지후 정신의 아들이자 시조 정배걸의 7세손으로 정리됩니다. 위키백과 본문은 급제를 '원종 4년(1273)'이라 쓰지만 1273년은 원종 14년에 해당해 연도 표기가 어긋나므로, 원종 말 장원급제로 적는 것이 안전합니다.
전주사록으로 시작해 이부총랑과 병부총랑을 지냈고, 세 고을의 수령으로서 모두 치적을 남겼다고 합니다. 충렬왕 때 우산기상시를 거쳐 우상시로서 내지를 관장했고 재초도감을 맡았습니다. 1302년에는 조간·방우선 등과 함께 국학박사 시험을 주관하라는 명을 받았고, 1303년에는 오기의 전횡을 알리려는 움직임 속에서 윤만비·김희 등과 함께 원나라 사신에게 글을 올려 오기의 죄를 고했습니다.
충선왕 때 첨의평리로 물러났습니다. 만년에는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것을 멀리하고 불교 경전을 읽으며 계율을 지켰다고 전합니다. 아들로 정광조·정광서·정광도를 두었고, 손자 정연(鄭珚, 자 맹순)은 판개성에 이르러 팔천군에 봉해졌으며 음률과 예에 정통해 많은 후학이 그의 문하에서 배웠다고 합니다. 이 정연이 경산 지역 초계 정씨의 입향조로 전해집니다.
정선의 이름은 한자 표기와 초명이 자료에 따라 다르게 정리되며, 위키백과에서도 급제 연도 표기에 모순이 있습니다. 이 항목은 『고려사』 열전과 위키백과 요약을 바탕으로 했고, 한자 이름은 확인하지 못해 비워 두었습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