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구를 막고 위화도회군에 공을 세운 고려 말 무신·문신, 조선에서 판한성부사를 지낸 인물(시호 호희)
| 생몰 | 1331 ~ 1414 |
| 시대 | 고려 말~조선 초 |
| 본관 | 초계 정씨 |
정요(鄭曜, 1331~1414)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활동한 인물로 본관은 초계이며 시호는 호희(胡僖)입니다. 내시 출신이었다고 전하나 출사의 경위는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부인은 조씨(趙氏)이고, 아들 정갱(鄭賡)은 공조참판을 지냈으며 손자 정발(鄭發, 1389~)은 동지중추부사에 올랐다고 합니다. 천호장공파 아래 호희공파가 그의 시호에서 이름을 얻은 계통으로 전해집니다.
1388년(창왕 즉위년)에는 왜적의 침구에 맞서 자혜부윤 조언 등과 함께 방어에 나섰습니다. 1390년(공양왕 2년)에는 위화도회군에 공이 있다 하여 회군공신에 책록되었고, 조선이 건국된 1392년에는 상의문하부사로서 원종공신에 책록되었으며, 이듬해 회군2등공신에 다시 책록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고려 말의 군사적 혼란 속에서 새 왕조의 개창에 협력한 공이 인정되었습니다.
태종 때인 1402년에는 손자 정발이 14세에 전농시직장 벼슬을 받은 일로 탄핵되기도 했으나, 1407년에는 판한성부사에 임명되었고 이후 잉령치사(벼슬을 가진 채 물러남)하였습니다. 1414년(태종 14) 세상을 떠나자 태종이 3일간 조회를 멈추고 부의를 내렸으며 중관을 보내 조문했다고 전합니다. 호희공파 후손은 지금도 경기 이천·춘천·수원 등지에 많이 산다고 전해집니다.
천호장공파 안에서 호희공파는 이천·춘천·수원·김포·용인 등 경기 일대와 충청·호남으로 퍼진 큰 지파입니다. 파명은 정요의 시호 호희와 같은 이름이므로, 이 계통의 상징적인 인물로 정요를 꼽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다만 파조의 세대와 계보는 자료마다 다르게 설명되므로 족보로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