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의 어진을 촬영한 것으로 알려진 서화가·사진가, 호는 설봉·백련

| 생몰 | 1852 ~ 1935 |
| 시대 | 조선 말·대한제국·일제강점기 |
| 본관 | 충주 지씨 |
지운영(池運永, 1852~1935)은 구한말의 서화가이자 사진가, 시인으로 본관은 충주, 호는 설봉(雪峰)·백련(白蓮)입니다. 한성부 종로 관훈방의 중인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종두법을 보급한 지석영의 형으로 소개됩니다. 독립운동가 지청천의 7촌 숙부이고 지달수의 삼종조부라고 합니다.
서른 가까운 나이부터 시문과 서예, 서화를 즐기던 그는 1881년 일본에 건너가 도쿄에서 사진술을 독학으로 익혔고, 1882년 귀국해 이듬해 한성부에 사진관을 열었습니다. 1884년에는 고종의 어진을 촬영한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이 공으로 중인 신분에서 벗어났다고 전합니다. 같은 해 통리군국사무아문의 부주사·주사 등을 지냈습니다.
1886년 박영효와 김옥균 등을 암살하려다 실패했다고 전하며, 이 일로 관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이후 1892~1893년 항저우·쑤저우를 유람했고, 1911년부터는 충주 상모면 안보리에 내려가 서화와 서예에 전념하다 1932년 경성으로 돌아왔습니다. 1935년 6월 6일 서울 가회정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1881년 일본으로 건너간 지운영은 도쿄에서 사진술을 독학으로 익혀 이듬해 귀국했습니다. 1883년에는 한성부에 사진관을 열었는데, 근대 사진술이 막 들어오던 때의 일입니다. 그 사진관은 1884년 갑신정변 때 독특한 구조 때문에 일본인의 집으로 오인되어 군중에게 파괴되었다고 전합니다.
1884년 3월 고종의 어진을 사진으로 촬영한 일이 가장 널리 알려진 업적입니다. 이 공으로 면천되었다고 하며, 학행에 따른 천거로 통리군국사무아문의 부주사와 주사를 지내고 1886년에는 군무관이 되었습니다. 현재 남아 전하는 그의 인물 사진 한 장은 갓을 쓴 모습으로 Wikimedia Commons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1886년 2월 그는 박영효와 김옥균 등을 암살하려다 실패했다고 전하며, 같은 달 관직을 사퇴했습니다. 당시 정세 속에서 개화파를 둘러싼 갈등이 얽힌 사건이므로, 평가는 자료에 따라 달리 서술됩니다. 이후로는 관직 복귀를 포기했다고 합니다.
1892~1893년 청나라 항저우·쑤저우를 유람하고 돌아온 지운영은 1911년부터 충주 상모면 안보리의 처가 쪽 친척 집이 있는 마을에 머물며 수묵화와 서예에 매진했습니다. 1932년 경성으로 돌아와 1935년 6월 세상을 떠났는데, 동생 지석영이 먼저 세상을 떠난 지 넉 달 뒤였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두산세계대백과 등에 항목이 있습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영결식은 서울 각황사에서 거행되었다고 전합니다.
지운영은 종두법을 보급한 지석영의 형입니다.
1884년 고종의 어진을 촬영한 초기 사진가이자 서화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설봉(雪峰)과 백련(白蓮)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