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독립군·한국광복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지청천의 맏아들

| 생몰 | 1909 ~ 1969 |
| 시대 | 일제강점기·대한민국 |
| 본관 | 충주 지씨 |
지달수(池達洙, 1909~1969)는 독립운동가이자 군인, 정치인으로 본관은 충주입니다. 한국광복군 총사령관을 지낸 지청천 장군의 맏아들이며, 이경옥·이달수라는 이름도 썼다고 합니다. 아버지를 따라 중국 둥베이로 건너가 지린성의 검성중학을 졸업했습니다.
중국 우창현에서 농촌 청년들을 모아 청년회를 조직해 항일 사상을 일깨웠고, 1931년 한국독립군에 들어가 총사령관 지청천 아래서 하사로 활동했습니다. 지린 독립군 전투와 솽청현 전투에 참전했으며, 1932년에는 반만 항일군과 연합해 소대장이 되어 30여 차례 전투에 참가했다고 전합니다.
1933~34년 중국중앙군관학교 분교와 뤄양분교 한인특별반에서 군사교육을 받고, 1940년 한국광복군 편성에 참여해 총사령부 경리를 맡았습니다. 이듬해에는 제2지대 구대장으로 활약했습니다. 광복 후 귀국하여 대한국민당·민주국민당 등에서 일했고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습니다.
지달수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따라 중국 둥베이 지역으로 건너갔습니다. 우창현에서는 농촌 청년을 규합해 청년회를 만들어 항일 독립 사상을 고취했다고 하며, 1931년 한국독립군에 들어가 지청천 총사령관 아래에서 지린 독립군 전투와 헤이룽장성 솽청현 정일군 전투에 각각 참전했습니다. 1932년에는 항일 반만군과 연합해 소대장이 되어 30차례 전투에 참가했다고 전합니다.
1933년 중국중앙군관학교 제2분교, 1934년 같은 학교 뤄양분교 한국인특별반에서 군사교육을 받았습니다. 1936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화북·평수 지구 공작단원으로 임명되었고 조선민족혁명당 중앙위원을 지냈습니다. 1940년 한국광복군이 편성되자 총사령부 경리에 임명되었고, 이듬해 제2지대 소속 구대장으로 활동했습니다.
8·15 광복이 되자 귀국하여 미군정청에서 잠시 일했고, 정부 수립 뒤에는 대한국민당 중앙위원, 민주국민당 중앙감찰위원, 한국광복군동지회 부회장, 대한독립동지회 상임위원장 등을 지냈습니다. 1956년 국방대학교 1기로 행정학사 과정을 마친 것으로 소개됩니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습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1969년 5월 16일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아버지 지청천, 어머니 윤용자, 동생 지정계, 누이동생 지복영이 소개되며, 삼종조부로 지운영과 지석영이 전합니다.
한국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의 맏아들입니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습니다.
독립운동가 지복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