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때 경성·강계·의주 등 북방 고을을 맡았던 무관
| 생몰 | 1363 ~ 1437 |
| 시대 | 고려 말·조선 초 |
| 본관 | 충주 지씨 |
지유용(池有容, 1363~1437)은 고려 말에 태어나 조선 초 세종 때까지 활동한 무관입니다. 본관은 충주이며, 아버지는 충원부원군 지용기, 어머니는 이천 서씨입니다. 음서로 벼슬에 올라 판경성부사와 판의주목사 등을 역임했습니다.
1407년(태종 7) 사재감으로서 세자 양녕대군이 명나라에 하정사로 갈 때 사신 일행으로 경사(북경)에 다녀왔습니다. 1426년 세종은 지영강현사로 떠나는 그에게 황해도 환상곡을 살펴 백성이 농사 때를 놓치지 않게 하라고 당부했습니다. 1429년에는 진응사로 북경에 갔고, 1432년 판경성군사로서 경원의 군마 부방과 공물 감면을 상언해 시행되었습니다.
이후 강계절제사·강계부사·판의주목사를 거쳐 1437년 1월 16일 세상을 떠나자 세종이 부의를 보냈다고 합니다. 황희와 권진이 경성 처치사로 그를 추천했을 때 세종이 "유능하다고 들었다"고 답했다는 기록이 전합니다.
1426년(세종 8) 황해도 영강현에 지현사로 내려가는 지유용에게 세종은 농사철을 놓치지 않도록 환상곡을 미리 알려 시행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이듬해 영강진 첨절제사를 지냈고, 1430년 7월 우군첨총제에 제수되었으며 같은 해 5월에는 호군으로서 대탄의 돌을 깨뜨리는 일을 감독했다고 합니다.
1432년 판경성군사로서 경원의 군마 부방과 공물 감면을 상언했고, 같은 해 경성 절제사로서 해청(매)을 잡아 세종에게 옷을 하사받았다고 합니다. 1434년에는 강계 절제사로 임명되어 세종으로부터 농상 권장과 형벌 신중, 기민 구제를 당부받았습니다. 이후 강계부사와 판의주목사를 지냈습니다.
충주 지씨 17세인 아버지 지용기에게서 충의군파의 무관 전통이 이어진 인물로, 누이가 최용과 혼인해 낳은 딸이 해녕부부인이 되어 문종의 비 현덕왕후의 어머니가 되었다고 전합니다. 이로써 충주 지씨는 조선 초 왕실과 가까운 혼맥을 이루었다고 설명되며, 장인은 목사 최윤우, 장모는 능성 구씨로 전합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누이는 최용에게 시집갔고 그 딸인 해주 최씨는 해녕부부인으로 문종의 왕비 현덕왕후의 어머니라고 전합니다. 아들로 지개와 지호가 있고 손자로 지계해·지계강·지계한이 전합니다. 지호는 한성 소윤으로서 원종공신에 녹훈되었습니다.
충원부원군 지용기의 아들입니다.
영강·경성·강계·의주 등의 고을을 맡아 북방을 다스렸고 진응사로 북경에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