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정유재란 때 황석산성에서 순절한 문신·의병장, 호 대소헌, 시호 충의
| 생몰 | 1537 ~ 1597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함안 조씨 |
조종도(趙宗道, 1537~1597)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함안이고 자는 백유(伯由), 호는 대소헌(大笑軒)입니다. 1558년 생원시에 합격한 뒤 안기도찰방이 되었고 1585년에는 양지현감으로 선정되었습니다. 1589년 정여립의 모반 사건 때 한때 투옥되었다가 풀려난 일이 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안음현감이 되었고 이후 함양군수를 지내다 병으로 물러났습니다. 의병장 김면의 휘하에서 곽준과 함께 활동하며 우척현 전투 등에서 싸웠습니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곽준과 함께 황석산성을 지켰고, 가토 기요마사의 군대와 맞서 싸우다 성이 함락될 때 전사했습니다.
시호는 충의(忠毅)이고 문집으로 『대소헌집』이 있습니다. 조종도와 곽준은 안음현에 세운 황암서원(1717년 건립, 이듬해 사액)에 모셔졌다고 전합니다. 대종회 정리에서 그의 후손은 남계공파 아래 대소헌공파(17대 종도)로 묶이며, 어계 조려로부터 5대손에 해당합니다.
임진왜란 초기 경상우도에서는 곽재우·김면·정인홍 등이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조종도는 김면의 휘하에서 곽준과 함께 활동한 것으로 알려지며, 우척현 전투 등에서 싸웠다고 전합니다. 함양군수를 지냈으나 병으로 물러난 뒤에도 전쟁이 끝나지 않아,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다시 의병을 규합해 성을 지키는 일에 나섰습니다.
1597년 황석산성을 지키던 조종도와 곽준은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했습니다. 곽준은 그의 두 아들과 함께 전사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전투는 정유재란 때 경상도 서부 방어선의 한 대목으로 기억됩니다. 두 사람을 기리는 황암서원이 1717년 안음현에 세워졌습니다.
조종도는 어계 조려의 5대손으로 헤아려지며, 조려의 후손 가운데 임진·정유재란에서 순절하거나 참전해 공을 세운 이들이 서산서원에 13충으로 모셔졌다는 전승이 있습니다. 위키백과의 함안 조씨 분파 목록에도 대소헌파가 따로 올라 있습니다. 나무위키는 이 13충의 내역을 조려의 손자 1명, 현손 3명, 5대손 8명, 6세손 2명으로 소개합니다.
묘소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곽준과 함께 황석산성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했습니다.
함안 조씨이며 어계 조려의 5대손으로 헤아려집니다. 대소헌공파의 중심 인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