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인 고려 충신, 호 덕곡, 덕곡공파 파조
| 생몰 | 1357 ~ 1417 |
| 시대 | 고려 말~조선 초 |
| 본관 | 함안 조씨 |
조승숙(趙承肅, 1357~1417)은 고려 말~조선 초의 학자로 본관은 함안이며 자는 경부(敬夫), 호는 덕곡(德谷)입니다. 1357년 함양에서 태어났다고 전하며, 정몽주의 문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문과에 급제한 해는 1377년설과 1384년설이 있어 자료마다 다릅니다. 1390년 무렵 부여감무를 지냈습니다.
1392년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세워지자 벼슬을 버리고 두문동에 들어갔습니다. 두문동은 고려의 신하들이 새 왕조를 섬기지 않겠다며 모여 살았다고 전하는 곳으로, 그를 포함해 이른바 두문동 72현을 꼽습니다. 그는 이후 고향 쪽인 함양 덕곡으로 돌아가 교수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후진을 가르치는 데 힘썼다고 합니다.
1417년 세상을 떠났으며 시호는 문경(文敬)이고, 문집으로 『덕곡집』이 전합니다. 슬하에 종인·종의·종례 세 아들을 두었다고 하며, 후손 가운데 종의의 현감공파와 종례의 제학공파가 함안조씨 대종회의 21원파 가운데 덕곡공파의 지파로 정리됩니다. 덕곡이라는 호가 곧 파명이 되었습니다.
두문동 72현은 고려 말 개성 부근의 두문동에 들어가 조선 왕조를 섬기지 않았다고 전하는 고려 신하들을 이르는 말입니다. 정확한 인원과 명단은 자료마다 다르고, 후대에 각 가문이 선조를 현창하면서 늘어난 면도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조승숙은 위키백과 등에서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으로 소개됩니다. 함안 조씨 가문에서는 그와 금은 조열이 모두 두문동에 은거했다고 전해 자부심의 원천으로 삼습니다.
조승숙이 돌아온 함양 덕곡은 그의 호이자 파명이 된 곳입니다. 그는 이곳에 정자를 짓고 제자를 길렀다고 하는데, 어느 제자가 어떻게 이어받았는지는 이 문서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문집 『덕곡집』은 그의 글과 행적을 전하는 기록입니다.
대종회의 정리에서 덕곡공파의 파조는 11대로 적히고, 어계 조려는 12대로 헤아려집니다. 조려의 아들들에게서 나온 갈래와 달리 별도의 원파로 서 있으며, 조선 개국에 맞서 벼슬을 사양한 이 선조의 이야기는 단종에게 절의를 지킨 조려의 이야기와 함께 함안 조씨 충절 전통의 두 기둥으로 이야기됩니다. 정몽주(정몽주)에게 배웠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묘소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고려 말 정몽주의 문인으로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충신입니다. 호는 덕곡이고 덕곡공파의 파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