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하 趙明河

1928년 타이중에서 일본 황족을 습격한 독립운동가

조명하
조명하 · 퍼블릭 도메인 (Wikimedia Commons, 작자 미상, 저작권 만료)
생몰1905 ~ 1928
시대일제강점기
본관함안 조씨

생애 약력

조명하(趙明河, 1905~1928)는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로 본관은 함안입니다. 1905년 5월 11일(음력 4월 8일) 황해도 풍천군에서 아버지 조용우의 차남으로 태어났다고 전하며, 풍천에서 학문을 익히고 심신을 단련했다고 합니다. 1926년 신천군청 읍서기로 잠시 일하다 학업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고, 9월 오사카에서 야간학교를 다니며 고학했습니다.

일본에서 독립운동의 뜻을 품고 대만을 거쳐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가기로 했으며, 1927년 11월 중간 기착지인 대만에 들렀습니다. 타이중의 한 상점에서 일하던 중 육군 대장 구니노미야 구니요시(久邇宮邦彦王)가 검열사로 대만을 찾는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척살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일부 자료에서는 이름을 구니히코로 읽기도 합니다.

1928년 5월 14일 구니노미야에게 독을 바른 단검을 던졌으나 목을 스쳤고 운전사의 등에 맞았으며, 조명하는 현장에서 체포되었습니다. 7월 18일 사형을 선고받고 10월 10일 타이베이 형무소에서 총살형으로 순국했습니다. 향년은 23세 또는 24세로 자료마다 다르게 적힙니다. 1963년 3월 1일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습니다.

유언과 기억

처형을 앞두고 남긴 유언에는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죽는 것이 한스럽다는 말과, 저세상에서라도 독립운동을 계속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전합니다. 1989년 KBS에서 그를 다룬 드라마 「조명하」가 방영되었습니다.

기념물

의거 지점인 타이중시청 앞 사거리에는 의거를 알리는 표지판이 세워졌고, 타이베이 한인학교에는 1978년 동상이 건립되었습니다. 1988년 5월 14일 의거 60주년을 맞아 서울대공원에도 동상이 세워졌으며, 1993년 5월에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습니다.

가문과 사료의 차이

함안 조씨 가운데 29세 제(濟)·하(河) 자 항렬 인물로 소개됩니다. 그의 나이와 사건 상대의 이름 표기는 자료마다 달라, 이 문서는 갈리는 부분을 병기했습니다. 가문 소개는 함안 조씨 문서에서 볼 수 있습니다.

묘소

묘소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조명하 자주 묻는 질문

조명하는 어떤 일을 했나요?

1928년 5월 대만 타이중에서 일본 황족 구니노미야에게 독 묻힌 단검을 던졌으나 실패하고 체포되어, 그해 10월 총살형으로 순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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