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현대문학』 초대 주간, 친일 문학 활동이 논의되는 인물
| 생몰 | 1920 ~ 1981 |
| 시대 | 현대 |
| 본관 | 함안 조씨 |
조연현(趙演鉉, 1920~1981)은 문학평론가로 본관은 함안이며 아호는 석재(石齋)입니다. 1920년 7월 26일 경상남도 함안에서 태어나 1939년 경성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습니다. 1938년 시인으로 등단했고 1941년 문학평론가로 데뷔했으며, 1945년 6월 초순 이후에는 시 창작을 접고 평론에 전념했습니다. 일본식 이름은 도쿠타 엔켄(德田演鉉)이었습니다.
광복 뒤 김동리·서정주 등과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했고, 1946년에는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결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잡지 『예술부락』을 창간했습니다. 1947년 무렵부터 우익 문단의 대표 인물로 활동했고 1948년 한국문학가협회 발족에 참여했습니다. 1954년 35세에 대한민국예술원 최연소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1955년 문학잡지 『현대문학』을 창간해 주간을 맡았습니다. 동국대학교 교수와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을 지냈습니다.
태평양전쟁 말기 국민문학이 성행하던 시기에 『동양지광』 등에 친일 평론을 여섯 편 남겼다고 하며, 일부는 일본어로 쓰였고 대표작으로 「동양에의 향수」(1942)가 거론됩니다. 2002년 발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포함되었으나, 광복 당시 20대 중반으로 해당 명단 인물 중 비교적 젊은 편입니다. 문화포장(1963), 예술원상(1966), 국민훈장(1971), 3·1문화상(1972)을 받았고 조연현문학상이 제정되어 있습니다.
1955년 창간한 『현대문학』은 한국 보수 문단의 중심 매체가 되었고, 조연현은 문단 행정가로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평가됩니다. 소설가 조정래도 1970년 이 잡지의 추천으로 등단했습니다. 한편 주간으로서 전횡을 했다는 평가와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직을 두고 김동리와 다툼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합니다.
그의 평론은 흔히 생리적 비평이라 불립니다. 정치적 이념보다 민족적 생리가 앞선다는 입장이어서 우파 민족주의 경향으로 평가되는 한편, 권력 지향적이고 체제 순응적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습니다. 이 문서는 평가를 단정하지 않고 알려진 내용만 적었습니다.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은 민족문제연구소가 2008년 발표한 것으로, 명단에 오른 것과 실제 사전 수록 여부는 구분해서 보아야 합니다. 조연현에 대해서는 『동양지광』 등에 실린 평론이 근거로 거론됩니다. 광복 뒤 그의 문단 활동과 수훈 기록도 함께 전해지므로 두 면을 모두 적습니다. 가문 전체의 이야기는 함안 조씨 문서를 참고하세요.
사망지는 일본 도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묘소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함안 출신 문학평론가로 『현대문학』을 창간해 주간을 지냈고 예술원 회원이었습니다. 태평양전쟁 말기 친일 평론을 남겼다는 기록이 있어 친일 인명 명단에 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