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변호사, 『전태일 평전』의 저자
| 생몰 | 1947 ~ 1990 |
| 시대 | 현대 |
| 본관 | 함안 조씨 |
조영래(趙英來, 1947~1990)는 인권변호사로 함안 조씨 가문 출신으로 분류됩니다. 위키백과 본문에는 본관이 직접 적혀 있지 않고 분류에 함안 조씨가 올라 있으며, 나무위키는 30세 래(來) 자 항렬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1947년 3월 26일 대구 대봉동에서 아버지 조민제와 어머니 이남필의 일곱 자녀 중 넷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서울로 이사해 경기중·고를 거쳐 1965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전체 수석으로 입학했습니다.
대학 시절 한일회담 반대와 부정선거 항의, 유신헌법 반대 운동을 이끌다 1970년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으로 구속되어 약 1년 6개월간 복역했습니다. 1974년 사법연수원 재학 중 민청학련 사건으로 수배되어 약 6년간 피신 생활을 했고, 1981년 복권되어 1982년 연수원을 마쳤습니다. 1983년 남대문합동법률사무소와 시민공익법률상담소를 열어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약 3년간 준비해 쓴 『전태일 평전』은 1983년 일본에서 먼저 나왔고 국내에서는 1991년 출간되었습니다. 그는 생전에 저자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1984년 망원동 수해 사건, 1986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보도지침 사건 등을 변론했고 1988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창립에 참여했습니다. 1990년 9월 폐암 진단을 받고 12월 12일 43세로 세상을 떠났으며, 박원순에게 “넓은 세계를 보라”는 말을 남겼다고 전합니다.
1984년 망원동 수해 사건은 한국 사법사상 초유의 대규모 집단소송으로 소개됩니다. 조영래는 수해가 천재가 아니라 인재임을 입증하려고 토목과 수문학 자료를 방대하게 독파했고, 이 사건이 집단소송제도 도입을 검토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됩니다.
1986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에서는 박원순과 함께 변론했고, 고발장 작성과 여론 형성, 법정 투쟁을 이끌어 약 4년간 싸웠다고 합니다. 가해 형사의 처벌과 국가를 상대로 한 위자료 청구 승소까지 이어졌고, 이 사건은 6월 민주항쟁의 계기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그는 인권변호사의 모임인 정법회 창설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공익 소송을 형사사건에서 노동·빈민·공해 등 민사 분야로 넓혔다고 평가됩니다. 1992년 『조영래 변호사 변론 선집』이 출간되었고,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에서 배우 문성근이 그를 모델로 한 인물을 연기했다고 합니다. 같은 30세 래 자 항렬로 소설가 조정래가 있습니다.
묘소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전태일 평전』을 쓴 인권변호사로 망원동 수해 사건과 부천서 성고문 사건 등을 변론했고, 1990년 43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함안 조씨 항렬자 래 자를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