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척화를 주도한 조선의 문신
동명이인 안내 — 같은 이름의 다른 인물:
김상헌(金尙憲) — 독립유공자 · 3·1운동 · 애국장(1991)
| 생몰 | 1570 ~ 1652 |
| 시대 | 조선 |
| 본관 | 안동 김씨 |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숙도(叔度), 호는 청음(淸陰), 본관은 안동이다. 1596년 정시문과에 급제한 뒤 공조·형조·예조·이조판서 등 육조 판서를 두루 지냈고, 1633년부터 2년간 다섯 차례나 대사헌에 제수될 만큼 강직한 언론 활동으로 이름이 높았다.
1636년 예조판서로 있을 때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를 호종하여 남한산성에 들어가 주화론을 배척하고 끝까지 척화(斥和)를 주장하였으며, 최명길이 작성한 항복 문서를 찢은 일화로 절의의 상징이 되었다. 1639년 청나라에 압송되어 6년간 억류되었다가 풀려나 귀국 후 좌의정에 올랐다.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고 시호 문정(文正)을 받았으며, 문집 《청음전집》과 제주 안무어사 시절의 기록인 《남사록》을 남겼다. 손자 김수항·김수흥 형제도 훗날 영의정을 지냈다.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 석실 (경기도 기념물 제100호)
손자 김수증·김수흥·김수항으로 이어지며, 후손에서 다수의 재상과 왕비를 배출한 장동(신) 안동 김씨 세도가문의 기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