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명의 12세손으로 호남 의병을 이끌다 구례 연곡사에서 순국한 의병장, 호는 녹천
| 생몰 | 1848 ~ 1907 |
| 시대 | 대한제국기(구한말) |
| 본관 | 장흥 고씨 |
고광순(高光洵, 1848~1907)은 대한제국기의 의병장으로 본관은 장흥이며 호는 녹천(鹿川)입니다. 담양 창평 출신으로 임진왜란 의병장 고경명의 12세손이자 둘째 아들 고인후의 봉사손으로 소개됩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 항목은 그가 을미사변 이후 기우만과 함께 의병을 모아 좌도의병대장으로 활약했다고 설명합니다. 1907년 을사늑약 뒤 60대에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었고, 남원성의 일본군을 공격한 뒤 구례 연곡사로 가서 화개동과 문수암 일대를 거점으로 삼았습니다. '불원복(不遠復)'이라 쓴 기를 만들어 의병을 격려했다고 전합니다.
1907년 연곡사에서 일본군의 야습을 받아 부장 고제량 등과 함께 전사했습니다. 순국 날짜는 자료마다 달라 9월 야습으로 설명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일본군 진중일지를 인용해 10월 17일 전투로 적는 기사도 있습니다. 위키백과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고 소개합니다.
고광순은 연곡사 일대에 근거지를 두고 불원복기를 앞세워 의병을 모았다고 합니다. '멀지 않아 되찾는다'는 뜻의 이 글귀는 나라를 되찾겠다는 다짐으로 읽힙니다.
연곡사 입구에는 순절비가 서 있고, 2025년에도 광복회 광주지부 등이 이곳을 참배했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신문 연재는 일제가 고광순의 의병 활동 중 가족을 핍박하고 창평 집을 불태웠고, 이때 학봉 종가의 고서와 유품이 소실되었다고 전합니다. 담양 포의사는 그를 배향한 사당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담양군이 1970년 지금 자리로 옮겼다고 소개됩니다.
위키백과는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고 전하나 이번에 별도로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구례 연곡사 입구에 순절비가 있고 담양 포의사에서 기립니다.
일제의 탄압으로 대가 끊길 위기가 있어 집안 어른들의 뜻에 따라 1939년생 고영준이 손자로 입적되었다고 보도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