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명의 장남으로 복수의병을 일으켜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한 의병장, 호는 준봉, 시호 효열

| 생몰 | 1554 ~ 1593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장흥 고씨 |
고종후(高從厚, 1554~1593)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의병장으로 본관은 장흥입니다. 자는 도충, 호는 준봉, 시호는 효열(孝烈)이며 의병장 고경명의 맏아들이자 고인후의 형입니다. 선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임피현령까지 올랐으나 탄핵으로 낙향했다고 전합니다.
1592년 아버지가 의병을 일으키자 격문을 쓰고 군량과 전마를 마련하는 일에 참여했습니다. 아버지와 동생이 금산 전투에서 전사한 뒤에는 시신을 수습해 수레에 싣고 광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이듬해 스스로 '복수 장군'이라 칭하며 의병을 모아 광주에서 훈련한 뒤 진주성으로 향했습니다. 1593년 6월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김천일, 최경회, 황진 등과 함께 싸우다 성이 함락되자 촉석루에서 남강에 몸을 던져 순절했고, 집안 노비 봉이와 귀인도 함께 물에 뛰어들었다고 전합니다.
고종후는 진주성에서 순절한 김천일·최경회와 함께 '삼장사'로 일컬어진다고 소개됩니다. 처음에는 도승지로 증직되었고 이후 이조판서로 추증되었으며, 숙종 때 효열 시호를 받았다고 합니다.
포충사와 진주 창열사에 모셔져 있고, 광주 포충사에서는 매년 향사를 올립니다.
고종후의 복수의병은 아버지와 동생의 죽음을 갚겠다는 개인적 결의에서 출발하면서도 호남 의병이 진주성 방어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 있습니다. 아들의 효성과 나라에 대한 충성이 한 사람 안에서 맞닿아 있다고 해서, 사후 시호에 효(孝)가 들어갔다고 풀이됩니다.
진주성에서 순절하여 시신은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하며, 묘소 위치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광주 포충사와 진주 창열사에서 기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