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명의 11세손으로 창평에 영학숙을 열어 신학문을 가르친 교육자, 호는 춘강
| 생몰 | 1863 ~ 1933 |
| 시대 | 조선 말~일제강점기 |
| 본관 | 장흥 고씨 |
고정주(高鼎柱, 1863~1933)는 구한말의 관료이자 교육자로 본관은 장흥이며 호는 춘강(春崗)입니다. 신문 연재는 그를 고경명의 11세손으로 소개하며, 구한말 정3품 규장각 직각을 지냈다고 합니다. 담양 창평 삼지내 마을에 그의 고택이 남아 있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을사5적을 처단하라는 상소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벼슬을 버리고 낙향했습니다. 같은 집안의 고광순이 무장 의병의 길을 걸은 것과 달리, 그는 근대 교육으로 실력을 기르는 길을 택했다고 설명됩니다.
창평 상월정에 영학숙을 열어 아들과 사위, 친구의 자제에게 영어 등 신학문을 가르쳤고, 사위인 인촌 김성수와 고하 송진우가 이곳에서 공부한 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고 합니다. 1908년 영학숙은 창흥의숙으로 개편되어 창평 객사 건물을 교실로 쓰고 학생 50명을 수업료 없이 가르쳤다고 전합니다.
상월정은 고려 때 대자암이 있던 곳으로 알려지며, 1457년 김응교가 정자 이름을 바꿨고 이후 언양 김씨와 함평 이씨를 거쳐 학봉파 고씨가 교육 장소로 썼다고 소개됩니다. 창평초등학교에는 상월정에서 옮겨 온 오층석탑이 있다고 합니다.
고택은 외손 후손인 학봉파 고씨들에게 이어져 교육의 장소로 쓰였다고 합니다. 삼지내 마을은 창평의 한옥 마을로 알려져 있으며, 방문 전에 개방 여부를 확인하세요.
묘소 위치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담양 창평 삼지내 마을의 고택과 창평초등학교의 창흥의숙 터 표지석이 그의 자취입니다.
둘째 아들 고광준(1882~1950)은 영학숙에서 공부한 뒤 상하이와 일본에서 유학했다고 소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