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형 盧自亨

조선 성종 때 성균관 대사성, 장흥 출신의 학자형 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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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1414 ~ 1490
시대조선 전기
본관광주 노씨

생애 약력

노자형(盧自亨, 1414~1490)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광주(光州), 전라도 장흥 출신입니다. 광주 노씨는 전남 장흥을 중요한 세거지의 하나로 꼽는데, 노자형은 그 가운데 이름을 남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1450년(문종 즉위년) 식년문과에 급제했습니다.

성품이 곧고 학술이 순정하며 일찍이 작은 병을 이유로 벼슬을 사양하고 영달을 구하지 않았다고 전합니다. 임금이 그 이름을 듣고 불러 1477년(성종 8) 성균관 사예에 임명하고 후진을 가르치게 했는데, 가르친 이들 가운데 이룬 바가 많았다고 합니다. 여러 벼슬을 거쳐 1482년 통정대부 성균관 대사성에 이르렀습니다.

일흔 살이 되어 사직을 청했으나 허락받지 못했고, 왼쪽 다리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한가로운 벼슬을 받아 몸을 돌보았습니다. 1488년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가 되었고, 1489년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에는 일찍이 수업을 받은 관생(館生)과 지방 관리와 선비들이 동쪽 교외까지 나와 전송했는데 관과 수레의 덮개가 가득 넘쳤다고 합니다. 당시 사람들이 그를 존경했음을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1490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기록은 위키백과 자료에 근거한 요약이며, 시호나 묘소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벼슬을 구하지 않은 선비

노자형은 작은 병을 이유로 벼슬을 사양하고 영진을 구하지 않았는데, 왕이 이름을 듣고 불러 성균관에 두었다는 이야기로 알려졌습니다. 성균관 사예에서 대사성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후진을 가르치는 데 힘쓴 교육자형 관료였습니다. 광주 노씨 가운데 노수신이 정치와 학문의 정점을 보여 준다면, 노자형은 지방 출신 선비가 교육으로 존경받은 사례로 대비됩니다.

장흥과 광주 노씨

전남 장흥은 광주 노씨의 대표적인 집성촌 가운데 하나입니다. 노자형이 장흥에서 나와 성균관 대사성에 이르렀다는 점은 광주 노씨가 호남에서 학문으로 자리를 잡았음을 보여 줍니다. 1489년 귀향길에 제자들이 도성 동쪽 교외까지 나와 전송한 장면은 스승으로서의 위상을 잘 전해 줍니다.

묘소

묘소와 시호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노자형 자주 묻는 질문

노자형의 본관은 어디인가요?

광주 노씨(光州 盧氏)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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