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현종 때 거란 2차 침입(1010) 당시 행영도통판관으로 통주 전투에 참여한 공신
| 시대 | 고려 전기 |
| 본관 | 광주 노씨 |
노전(盧戩)은 고려 전기의 공신으로 본관은 광주입니다. 생몰년과 부모의 이름은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한국어 위키백과는 광주 노씨 분류 아래 그를 소개하며, 광주 노씨의 인물 가운데 고려 시대의 이름이 비교적 이른 사람으로 꼽힙니다. 광주 노씨 본문에서도 노전·노숭·노자형 등이 대표 인물로 소개됩니다.
기록에 따르면 1010년 거란이 고려를 침공해 제2차 여요전쟁이 일어났을 때 행영도통판관으로서 강조 휘하에 종군해 통주 전투에 참가했습니다. 이 전쟁은 1009년 강조의 정변으로 목종이 폐위되고 현종이 즉위한 일을 구실로 거란 성종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온 것으로, 강조는 통주에서 거란군과 맞섰습니다. 노전은 이 싸움에서 포로로 붙잡혔고, 위키백과는 마수와 함께 통주성에 파견되었다가 최질과 홍숙에게 붙잡혔다고 적습니다. 사건의 세부 경위는 사료마다 서술이 다르므로 자세한 내용은 『고려사』 등 원전과 대조해 읽어야 합니다.
그의 이름은 2023~2024년 KBS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 등장인물로 나온 것으로도 알려져 있어(배우 김태한), 대중에게 광주 노씨 인물의 존재를 알린 사례입니다. 다만 드라마는 극적 구성이 들어간 창작물이므로 역사 기록과는 구분해 보아야 합니다. 노전의 후손 관계나 묘소, 이후의 행적은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고, 족보월드는 확인된 사실만 적었습니다.
1009년 강조가 정변으로 목종을 폐하고 현종을 세우자, 이듬해 거란이 이를 구실로 고려를 침공했습니다. 강조는 군대를 이끌고 통주에서 거란군과 맞섰고, 노전은 그 휘하에서 행영도통판관으로 있었다고 합니다. 이 전쟁은 고려의 수도 개경이 함락되고 현종이 남쪽으로 피난하는 상황까지 이어진 큰 위기였습니다. 노전의 개인 행적은 단편적으로만 전해지지만, 광주 노씨가 고려 초기 국가적 사건 속에서 이름을 남긴 사례로 소개됩니다.
노전에 관한 기록은 매우 짧아 생몰년, 부모, 후손 관계가 확인되지 않습니다. 광주 노씨 시조 노해와의 세대 관계도 알 수 없어, 족보월드는 그를 광주 노씨의 이른 시기 인물로만 소개합니다. 드라마에 등장했다는 사실은 대중적 인지도의 문제이고 역사적 사실 확인과는 별개이므로, 자세한 내용은 『고려사』와 연구 논문을 함께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묘소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광주 노씨(光州 盧氏)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