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관찰사, 인평대군의 장인, 사후 영의정 추증, 호는 동암·백암
| 생몰 | 1592 ~ 1640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동복 오씨 |
오단(吳端, 1592~1640)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동복, 자는 여확(汝確), 호는 동암(東巖)·백암(白巖)입니다. 아버지는 오백령, 부인은 청송 심씨이며, 형은 오준으로 전합니다. 1618년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하고 1624년 알성문과에 급제해 전적이 되었습니다.
이후 형조와 공조의 좌랑, 병조정랑, 교리, 정언, 지평, 수찬, 장령 등을 지냈으며 1637년에는 전주부윤을 거쳐 충청감사와 황해도감사를 역임했습니다. 1634년 둘째 딸을 인조의 셋째 아들 인평대군에게 시집보냈고, 왕자의 장인이라는 이유로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습니다.
아들로 오정일·오정위·오정창 등이 전하며, 이들이 17세기 남인 계열의 핵심 관료가 됩니다. 대백과 계통 자료는 오단을 오준의 둘째 아들로 적고 있으나 오준(1587)과 오단(1592)의 나이를 보면 형제로 보는 위키백과 서술이 더 자연스러워 이 글은 후자를 따랐습니다.
오단은 인조반정(1623) 직후인 1624년 알성문과에 급제했습니다. 이후 육조의 낭관과 언관직을 거쳐 병자호란 직후인 1637년 전주부윤으로 나갔고 충청·황해도 관찰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인평대군은 인조의 셋째 아들로 청나라에 볼모로 가는 등 외교 일선에서 활동한 왕자였고, 오단의 딸이 그의 부인이 된 혼인은 이 집안이 왕실과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이해됩니다. 다만 그가 49세로 세상을 떠난 시점(1640)은 이 혼인 이후 6년뿐이어서, 외척으로서의 영향은 주로 자손 대에 나타났을 것으로 보입니다.
1634년 둘째 딸이 인조의 셋째 아들 인평대군과 혼인했습니다. 이 딸은 복천부부인이라 불리며 오정위의 여동생으로 소개됩니다.
출처: 위키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계통 자료. 족보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묘소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인조의 셋째 아들 인평대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