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왕~충숙왕 때 첨의찬성사에 올라 구성군에 봉해진 고려 후기 문신, 시호 문제
| 생몰 | 1259 ~ 1336 |
| 시대 | 고려 후기 |
| 본관 | 동복 오씨 |
오잠(吳潛, 1259~1336)은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동복입니다. 아버지는 찬성사 오선이며, 처음 이름은 오기(吳祁), 자는 흥우(興雨), 호는 동헌(東軒), 시호는 문제(文齊)입니다. 위키백과는 충혜왕과 공민왕의 어머니, 그리고 충숙왕비 명덕태후와 고종사촌 사이라고 적고 있으나, 이 부분은 『고려사』 계통 서술과 대조가 필요합니다.
충렬왕 때 과거에 급제해 승지·지신사·지밀직사사·감찰대부를 거쳐 지도첨의사사에 올랐고, 충선왕 때는 예문관대제학이 되었습니다. 충숙왕이 즉위한 1313년에는 첨의평리와 상의회의도감사를 맡았고 이듬해 삼사사에 임명되었으며, 1320년(충숙왕 7) 첨의찬성사에 올라 구성군(龜城君)에 봉해졌다고 합니다.
그의 일대기는 『고려사』 권125 열전에 실려 있어 후대 평가가 엄한 편인 인물입니다. 따라서 동복 오씨의 고려 시대 대표 조상이면서도 가문의 자랑으로만 소개하기는 어렵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계통 자료는 그를 시조 오녕의 6세손으로 소개하고 예문관대제학을 거쳐 첨의찬성사가 되었다고 요약합니다.
오잠이 활동한 13세기 말~14세기 전반은 원나라의 영향이 강하던 시기로, 충렬왕·충선왕·충숙왕이 번갈아 왕위를 이으며 정치가 크게 흔들렸습니다. 이 시기의 관료는 왕과 원 조정 사이에서 처신이 갈렸고, 『고려사』 열전은 그 가운데 일부를 엄격하게 평가합니다. 오잠 역시 그런 평가를 받는 인물이므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계통의 소개와 『고려사』 서술을 나란히 읽는 것이 좋습니다.
충렬왕 때 급제한 뒤 승지·지신사·지밀직사사·감찰대부를 지냈고, 충선왕 때 예문관대제학이 되었습니다. 충숙왕 때는 첨의평리·상의회의도감사·삼사사를 거쳐 첨의찬성사에 올랐습니다.
오잠은 『고려사』 열전에 기록된 인물로, 가문의 영예로만 보기 어려운 평가가 따릅니다. 자세한 사적은 원전과 학술 자료를 함께 확인하시기를 권합니다. 동복 오씨 전체 소개는 동복 오씨에서 볼 수 있습니다.
출처: 위키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계통 자료. 족보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묘소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동복 오씨이며, 대백과 계통 자료는 시조 오녕의 6세손으로 봅니다.
1320년 첨의찬성사에 올라 구성군에 봉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