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중군사정부령, 인천 월성박씨 종중 묘역의 중시조로 소개됨
| 생몰 | 1337 ~ 1404 |
| 시대 | 고려 말~조선 초 |
| 본관 | 월성 박씨 |
박구(朴龜, 1337~1404)는 위키백과가 소개하는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62호 월성박씨 종중 묘역(인천 남동구 서창동)의 중시조입니다. 묘역 설명에 따르면 그는 고려 때 중군사정부령(中軍司正副令)을 지냈고, 고려가 망하자 이곳에 칩거하며 자신을 감춘다는 뜻으로 호를 장아(藏我)라 하고 뒷산을 장아산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장아산의 높이는 해발 73.6미터입니다.
묘역은 장아산 서쪽 구릉에 있으며 박구와 그의 후손인 박간, 박휘, 박신겸, 박호겸, 박홍중 등 11기의 묘가 남아 있습니다. 봉분, 묘표, 문인석, 망주석은 조선 시대 사대부의 유교식 묘제를 보여 주고, 특히 박휘·박신겸·박호겸의 묘표는 제작 연대가 분명해 조선 중기 묘제와 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금석문 자료라고 합니다. 묘역은 2010년 5월 3일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6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묘역 설명은 월성 박씨를 신라 경명왕의 제8왕자 월성대군의 자손으로 고려 후기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해 조선 전기와 중기에 크게 융성한 가문이라고 정리합니다. 박구가 중시조라는 이 서술은 위키백과 월성 박씨 항목의 중시조 설명(박휘·박인육)과 다르므로, 문중 전승의 차이로 읽어야 합니다. 그의 가족과 관직 경력은 공개 자료에서 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고려가 망하자 이곳에 숨어 지낸다는 뜻으로 호를 장아(藏我)라 했고, 뒷산 이름도 장아산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름의 풀이는 묘역 소개 글의 설명입니다.
11기의 묘와 묘표, 문인석, 망주석이 남아 있습니다. 같은 이름 박휘가 고려 혜종 때 판결사였다는 위키백과의 박휘와 같은 사람인지는 확인되지 않으며, 묘표가 조선 중기 것이라는 점에서 다른 사람으로 보입니다.
인천광역시 남동구 서창동 장아산 서쪽 구릉의 월성박씨 종중 묘역(인천 기념물 제62호)에 있다고 전합니다.
인천 남동구 서창동 장아산 서쪽 구릉에 있으며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62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