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규홍 의병부대의 군수장 겸 운량관으로 군수물자를 댄 의병 후원자
| 생몰 | 1871 ~ 1934 |
| 시대 | 일제강점기 |
| 본관 | 진원 박씨 |
박제현(朴濟鉉, 1871~1934)은 전라남도 보성군 문덕면 법화마을 출신으로 진원 박씨 장중파 24세손이며 아버지는 박중규입니다. 초명은 박정현(朴禎鉉), 자는 윤장(潤章), 호는 춘파(春波)이고, 진원박씨족보에는 1872년생으로 실려 있다고 합니다. 사망 연도는 나무위키가 1934년으로 적지만 2017년 가옥 문화재 등록 보도에서는 1909년으로 적어 자료가 갈립니다.
1896년 보성 대원사에서 진원박씨족보를 중간(重刊)할 때 간행 자금의 출납을 맡은 임원이었다고 하며, 1908년 2월 안규홍이 의병장으로 추대된 뒤에는 군수장 겸 운량관으로서 의병 450여 명에게 군수물자를 지원했다고 합니다. 같은 해 2월과 8월, 이듬해 3월의 여러 전투에 참여해 승리에 기여했다고 전합니다.
나무위키는 박제현의 어머니가 안규홍의 고모여서 두 사람이 고종사촌이며, 안규홍은 열 살 무렵부터 박제현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했고 명분상 주인은 박제현이었다고 적습니다. 머슴 출신의 의병장과 그 주인이 함께 의병으로 활동하고 모두 독립유공자로 서훈된 드문 사례입니다. 박제현은 1987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습니다. 두 사람이 살던 법화마을의 집은 '보성 안규홍·박제현 가옥'으로 2017년 12월 국가등록문화유산에 등록되었습니다.
안규홍은 1908년 2월 보성에서 기병해 파청대첩(1908.2), 진산대첩(1908.8), 원봉대첩(1909.3) 등을 이끈 의병장이며, 일본군도 그의 부대를 가장 강한 의병 부대 가운데 하나로 평가했다고 합니다. 박제현은 이 부대의 군수장·운량관으로 450여 명의 의병이 먹고 쓸 물자를 댔습니다.
안규홍은 1909~1910년 체포되어 1910년 6월 22일 대구감옥에서 순국했고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고 합니다.
박제현은 1987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습니다. 두 사람이 살던 보성 법화마을의 집은 2017년 12월 5일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고, 소재지는 보성군 문덕면 법화길 113-1입니다. 머슴과 주인이 함께 서훈된 유일한 곳이라는 설명이 따릅니다.
나무위키에는 증손자 박형대가 전라남도의회 의원이라고 적혀 있으나, 현존 인물의 사적 정보이므로 여기서는 이름만 밝힙니다.
1896년 보성 대원사에서 진원박씨족보를 다시 간행할 때 그가 자금 출납을 맡은 임원이었다고 합니다. 이는 문중 안에서도 신망이 높았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보성군 문덕면 법화길의 '보성 안규홍·박제현 가옥'(안채 144㎡, 사랑채 85㎡)이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묘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고 합니다(1987년에는 대통령표창).
나무위키는 고종사촌이며 안규홍이 박제현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했다고 적고, 보도는 군량관과 의병장으로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