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사화 후 순천 운곡촌에 내려와 후학을 기른 상주 박씨 순천 입향조, 호 운곡
| 생몰 | 1496 ~ 1573 |
| 시대 | 조선 전기 |
| 본관 | 상주 박씨 |
박증손(朴曾孫, 1496~1573)은 조선 전기 학자로 본관은 상주이며, 전라남도 순천에 터를 잡은 상주 박씨의 입향조입니다. 자는 대이(大而), 호는 운곡(雲谷)입니다. 아버지는 박윤문, 할아버지는 박양선이고 부인은 청주 한씨 한인수의 딸입니다. 디지털순천문화대전은 그가 소과에 합격했다고 전하며, 한 자료는 1510년에 진사가 되었다고 적지만 태어난 해와 맞추면 나이가 너무 어려 확인이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종조부뻘인 도원재 박세희에게 학문을 배웠고, 이어 조광조의 문하에서 공부했습니다. 1519년 기묘사화로 조광조와 그 문인들이 화를 입자, 스승들이 그에게 서울을 떠나 은거하라고 권했다고 전합니다. 이에 두 아들과 사위 허형(양천 허씨 순천 입향조)과 함께 순천 상사면의 운곡촌(雲谷村)으로 내려왔습니다. 이 낙향이 오늘날 순천 상주 박씨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운곡촌에 정착한 그는 벼슬길 대신 후진 교육에 힘써 많은 인재를 길러 냈고, 한 시대의 스승(師表)으로 추앙받았습니다. 호남 사림 가운데 기묘사화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 고향에서 학맥을 이어 간 사례의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지었다고 전하는 운곡당은 후손들이 다시 세워 재실로 쓰고 있다고 합니다. 묘소는 순천시 상사면 운곡산 자락에 있습니다.
그의 학문과 의기는 손자 박대붕에게 이어져 박대붕이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싸우다 금산에서 전사했습니다. 순천시 상사면 동백리의 이천서원에는 박증손·박대붕·박세희가 함께 배향되어 있습니다. 서원은 1827년 호남 유림의 발의로 세워졌다가 서원철폐령으로 헐렸고, 1961년 후손들이 기금을 모아 옛터에 다시 세웠다고 전합니다. 참고 문헌으로 『상주박씨대동보』, 『순천향교지』, 『승주군사』가 제시됩니다.
1519년 기묘사화 후 두 아들과 사위 허형과 함께 순천 운곡촌에 내려와 후학을 길렀습니다.
순천 상사면 동백리의 이천서원에 박증손·박대붕·박세희가 배향되어 있으며, 1961년 후손들이 복설했습니다.
순천시 상사면 운곡산 유좌(酉坐)에 묘소가 있다고 합니다.
손자 박대붕이 의병장으로 이름을 남겼고, 후손이 순천 판서공파(순천파)를 이룹니다.
1519년 기묘사화 뒤 스승들의 권유로 한성을 떠나 순천 운곡촌에 은거했습니다.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싸운 박대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