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문인화가, 남북종 화법을 아우른 화풍
| 생몰 | 1707 ~ 1769 |
| 시대 | 조선 후기 |
| 본관 | 청송 심씨 |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은 조선 후기의 화가로, 본관은 청송, 자는 이숙(頤叔), 호는 현재(玄齋)입니다. 영의정 심지원의 증손이자 심익창(沈益昌)의 손자이며, 포도 그림으로 이름난 죽창 심정주(沈廷胄)의 둘째 아들입니다. 외할아버지는 포도를 잘 그린 선비 화가 정유승으로, 친가와 외가 모두 이름난 집안이었습니다.
명문가에서 태어났으나 할아버지 심익창이 1699년 과거 부정 사건으로 관직을 삭탈당하고 10년 넘게 유배되었으며, 풀려난 뒤 김일경과 함께 왕세제(뒤의 영조)를 해치려 했다는 혐의로 1725년 고문을 받다 죽으면서 집안은 역모 죄인의 후손으로 낙인찍혀 몰락했습니다. 이 때문에 심사정은 사대부의 길을 포기하고 평생 그림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어린 시절 정선에게 그림을 배웠으나 1721년 정선이 하양현감으로 부임하면서 관계가 끊겼다고 합니다. 1748년(영조 24) 어진을 모사하는 일에 감동(監董)으로 발탁되었지만, 역적의 손자에게 중책을 맡길 수 없다는 상소로 5일 만에 물러나야 했습니다. 이후 더욱 그림에 몰두해 환갑 가까운 나이에도 하루에 여러 점을 그렸다고 하며, 서대문 밖에서 가난하게 지내다 1769년 63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교유의 폭은 좁았지만 표암 강세황과 가장 가까이 지내며 함께 그림을 그리고 감상했고, 김광수·김광국 같은 수장가의 도움으로 중국 서화와 화보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1761년에는 강세황과 함께 『표현양선생연화첩』을 남겼습니다. 절파 화풍과 남종화 양식을 바탕으로 독자적 화풍을 이루어, 정선·조영석 등과 함께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화가로 평가됩니다. 강세황은 그가 화훼·초충을 가장 잘 그렸고 영모와 산수가 그다음이라고 평했습니다.
대표작으로 「강상야박도」, 「파교심매도」, 「촉잔도권」 등이 있으며, 국립중앙박물관과 간송미술관 등에 여러 작품이 소장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