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종 때 좌의정, 심연원의 아우
| 생몰 | 1499 ~ 1572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청송 심씨 |
심통원(沈通源, 1499~1572)은 조선 중기 명종 때의 문신으로, 본관은 청송, 자는 사용(士容), 호는 욱재(勖齋)입니다. 영의정 심회의 증손이고 심순문의 넷째 아들이며, 영의정 심연원의 막내 아우입니다. 명종비 인순왕후에게는 종조부가 됩니다.
어려서부터 천재로 불렸다고 하며, 1519년 생원시에 입격한 뒤 1537년(중종 32)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했고, 1546년(명종 1) 문과중시에도 급제했습니다. 그 사이 1543년 세자시강원 필선으로 있을 때 서연의 강론이 바르지 않다는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면직되기도 했습니다. 홍문관 부응교로 등용되어 시강관으로 임금의 학문을 돕고, 직제학이 되어 조정의 공문서를 도맡아 지었습니다. 이어 병조참지, 우승지·좌승지, 경상도관찰사, 예조참판, 대사헌, 형조참판, 한성부판윤 등을 거쳤고, 명나라에 동지사로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우의정에 올라 형 심연원에 이어 형제 정승이 되었으며, 좌의정에 이르러 기로소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외척으로서 윤원형 등과 함께 권력을 남용하고 뇌물을 받았다는 이유로 1565년 삼사의 탄핵을 받아 좌의정에서 물러났고, 1567년 선조 즉위 뒤에는 이이 등의 탄핵으로 관작을 삭탈당했습니다. 당시 이량·윤원형과 함께 '삼흉(三凶)'으로 불렸다는 평가가 전할 만큼, 명종 대 척신 정치의 한 축으로 비판받는 인물입니다. 1572년 73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편 청송 심씨 족보사에서는 1545년 순천에서 간행된 첫 족보 을사보(乙巳譜)를 펴낸 인물로 기록되어, 가문의 족보 편찬 첫머리에 이름이 오릅니다. 1558년에는 풍기군수의 보고를 받고 우의정 안현 등과 함께 훼손된 안향의 영정을 고쳐 복원하는 일을 주선했다고도 전합니다.
묘와 1575년에 세운 신도비는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이곡리에 있으며, 포천시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이곡리에 묘와 1575년 건립한 신도비가 있으며, 포천시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