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순왕후의 동생, 동서 분당 때 서인의 영수
| 생몰 | 1535 ~ 1587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청송 심씨 |
심의겸(沈義謙, 1535~1587)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청송, 자는 방숙(方叔), 호는 손암(巽菴)·간암(艮菴)·황재(黃齋)입니다. 영의정 심연원의 손자이고 청릉부원군 심강의 아들이며, 명종비 인순왕후의 동생입니다. 이황의 문인으로, 동서 분당 때 서인의 중심인물이 되었습니다.
1555년(명종 10) 진사시에 합격하고 1562년 별시문과에 급제해 청요직에 올랐습니다. 1563년 외숙인 권신 이량이 사림을 해치려 하자 오히려 그를 탄핵해 물리쳐 사림을 보호했습니다. 이후 지평·사인·사간·직제학·동부승지·대사간 등을 지냈고, 1572년 무렵 이조참의로 있으면서 척신 출신이면서도 사림 사이에 명망이 높았습니다.
이때 김종직 계통의 신진 김효원이 이조정랑에 천거되자, 그가 명종 때 권신 윤원형의 집에 기거한 일이 있다는 이유로 반대했습니다. 김효원은 1574년 결국 이조정랑이 되었고, 1575년 심의겸의 아우 심충겸이 이조정랑에 추천되자 이번에는 김효원이 전랑 자리는 척신의 사유물이 될 수 없다며 반대했습니다. 이 대립을 계기로 심의겸을 중심으로 한 기성 세력은 서인, 김효원을 중심으로 한 신진 세력은 동인으로 갈라졌는데, 김효원이 도성 동쪽에, 심의겸이 서쪽에 살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노수신과 이이가 분쟁이 격해질 것을 우려해 상소함에 따라 개성유수로 나갔고, 이후 전라감사·함경감사·전주부윤·예조참판 등을 지냈습니다. 이이가 그를 감쌌으나 1584년 이이가 세상을 떠나자 동인의 공격으로 파직되었고, 파주에 물러나 살다가 1587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청양군(靑陽君)에 습봉되었고 나주 월정서원에 제향되었습니다.
효성이 지극하고 검소하여 외척이면서도 권세를 함부로 부리지 않았다는 평이 있는 반면, 선조는 그를 붕당의 원흉으로 지목하기도 했습니다. 장녀는 윤두수의 아들 윤훤과 혼인했다고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