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숙주 申叔舟

조선 전기 문신·학자 (문충공파 파조)

신숙주 초상
사진: 퍼블릭 도메인, 위키미디어 커먼스 · Wikimedia Commons
생몰1417 ~ 1475
시대조선 전기
본관고령 신씨

생애 약력

신숙주(申叔舟, 1417~1475)는 조선 전기의 문신·학자·외교가로, 고령 신씨 문충공파(文忠公派)의 파조입니다. 자는 범옹(泛翁), 호는 희현당(希賢堂)·보한재(保閑齋), 시호는 문충(文忠)입니다. 공조참판 신장의 셋째 아들로, 외가가 있던 전라도 나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윤회와 정인지에게 배웠고, 윤회의 손녀인 무송 윤씨와 혼인했습니다.

1438년(세종 20) 생원·진사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친시문과에 급제했으며, 집현전 학사로서 성삼문·박팽년 등과 함께 훈민정음 창제와 연구에 참여했습니다. 1443년 통신사 변효문의 서장관으로 일본에 다녀왔고, 돌아오는 길에 대마도와의 계해약조 체결에도 관여했다고 전합니다. 이때의 견문은 뒤에 일본과 류큐의 지리·풍속·외교 의례를 정리한 『해동제국기』(1471)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동국정운』 편찬에 참여했고 1447년 문과 중시에 합격했습니다. 중국어·일본어·몽골어·여진어 등에 두루 능했다고 합니다.

1453년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세조) 편에 서서 정난공신이 되었고, 세조 즉위 뒤 좌익공신 1등에 책록되어 고령군(뒤에 고령부원군)에 봉해졌습니다. 병조판서·예조판서·좌찬성을 거쳐 1460년 강원·함길도 도체찰사로 모련위 여진을 정벌했고, 1462년 영의정에 올랐습니다. 예종 때 남이의 옥사를 처리한 공으로 익대공신, 성종 즉위 뒤 좌리공신에 책록되어 네 차례 공신이 되었으며, 1471년 다시 영의정이 되었습니다. 세종부터 성종까지 여섯 임금을 섬겼고, 『국조오례의』·『고려사』·『세조실록』 등의 편찬에도 참여했습니다. 1475년 세상을 떠나기 전 문병 온 성종에게 일본과의 화친을 잃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전합니다.

사육신과 달리 세조 편에 선 일로 후대 사림과 소설에서 비판받았으나, 근래에는 한글 창제와 외교·국방에서의 업적이 재평가되고 있습니다. 그의 영정(보물)은 청주시 가덕면 구봉영당에 모셔져 있습니다. 아들로 신주·신면·신찬·신정·신준·신부·신형·신필을 두었고, 손자 신종호·신용개·신광한이 모두 이름을 떨쳤습니다. 독립운동가 신채호는 그의 18대손입니다.

묘소

경기도 의정부시에 신숙주의 묘소가 있습니다.

후손

9남 2녀를 두었으며, 아들 신면(申沔)·신정(申澂)·신준(申浚)·신부(申溥)·신형(申泂)·신필(申泌) 등이 후대에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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