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하형 禹夏亨

이인좌의 난 때 곤양군수로서 진압에 나선 무신, 《무신토적일기》를 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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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1686 ~ 1749
시대조선 후기
본관단양 우씨

생애 약력

우하형(禹夏亨, 1686경~1749)은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단양입니다. 아버지는 우순필(추증 병조판서), 조부는 우극명, 증조부는 우숭문이며, 어머니는 전주 이씨입니다. 숙종 36년(1710) 25세에 무과에 급제하고 이듬해 선전관에 제수되었으며, 이후 훈련원주부·판관·첨정, 황해도 우후를 지냈습니다. 출생 연도는 나이 기록에서 계산한 값입니다.

영조 3년(1727) 장연현감이 되었으나 부임하지 않다가 곧 곤양군수가 되었습니다. 영조 4년(1728) 봄 이인좌의 난(무신난)이 일어나 이웅보와 정희량 등이 영남에서 세를 떨쳐 열흘 만에 다섯 고을이 함락되자, 우하형은 경상우병사 이시번의 부름으로 소식을 확인한 뒤 곤양의 군사를 조발해 진주성으로 달려갔습니다. 묘갈명에는 "적이 준동하는데 천리 바깥의 조정 지휘만 기다릴 수 없다"고 말했다고 전합니다. 생초역에서 반군이 이웅보·정희량 등을 포박해 바치자 우하형이 그 자리에서 수괴들을 처형했는데(《영조실록》에는 정희량 등은 우하형이, 이웅보 등은 뒤이어 온 이석복이 베었다고 적혀 있어 자료마다 다릅니다), 윗선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즉결 처분한 점과 이를 개인의 원한을 갚으려는 부하에게 맡긴 점을 경상감사 황선이 비판해 큰 포상은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진중의 상황을 적은 《무신토적일기》를 남겼습니다.

그 뒤 하동부사, 경주영장, 경상좌수사, 회령부사, 함양군수, 이산부사, 경상좌병사 등 변방과 영남의 요직을 두루 지냈습니다. 영조 9년(1733)에는 이산부사로서 국경을 넘은 잠상을 잡은 공을 인정받기도 했으나, 청나라 사람의 범월 처리 문제로 문책을 받는 등 평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영조 18년(1742) 관북병마절도사에 올랐다가 그해 파직되었고, 영조 25년(1749) 9월 8일 64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채제공이 쓴 묘갈명에 따르면 황해도 평산에 장사 지냈다고 합니다. 한산 이씨와 혼인해 홍규·홍상 두 아들과 딸을 두었습니다.

이인좌의 난과 진주성

1728년 3월 난의 소식을 확인한 뒤 곤양 군사를 조발해 진주성으로 달려갔습니다. 묘갈명과 《영조실록》의 서술에 차이가 있어 성문 앞 상황은 자료마다 다릅니다.

변방과 영남의 요직

하동부사, 경상좌수사, 회령부사, 이산부사 등을 지냈고 1742년에는 관북병마절도사에 올랐습니다. 같은 가문의 임진왜란 의병장 우성전이 문신으로 이름을 남긴 것과 대비되는 무인의 길이었습니다.

묘소

채제공이 지은 묘갈명에 따르면 사망 두 달 뒤인 11월에 황해도 평산 금암면의 언덕에 장사 지냈다고 합니다.

후손

한산 이씨와의 사이에 홍규·홍상 두 아들과 딸을 두었고, 홍규는 절도사, 홍상은 진사였습니다.

우하형 자주 묻는 질문

우하형은 누구인가요?

영조 때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곤양군수로서 진주성으로 달려가 진압에 나선 무신입니다.

《무신토적일기》는 무엇인가요?

우하형이 난을 진압하던 진중의 상황을 적어 남긴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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