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하영 禹夏永

수원의 실학자, 정조·순조에게 시무책을 올리고 《천일록》을 지은 학자, 호 취석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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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1741 ~ 1812
시대조선 후기
본관단양 우씨

생애 약력

우하영(禹夏永, 1741~1812)은 조선 후기의 학자로 본관은 단양이며, 자는 대유(大猶, 자료에 따라 大猷로도 적습니다), 호는 취석실(醉石室)·취석당입니다. 수원 출신으로, 유생으로 과거에 급제했으나 회시에는 끝내 합격하지 못하고 일생을 학문에 정진했습니다.

정조 20년(1796) 왕이 의견을 구하는 구언윤음을 내리자 이에 응해 시무책을 상소했고, 순조 4년(1804) 다시 구언윤음에 응해 《천일록(千一錄)》을 바쳤습니다. 《천일록》에서 그는 농업을 근본으로 삼는 중농주의적 경제관을 견지하면서도 상업적 농업의 필요를 주장했습니다. 또한 중세적 신분질서가 무너지는 것에는 반대했지만, 경제적으로 실력 있는 사람의 신분 이동은 긍정하는 등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의 사회 현실을 반영한 사상을 전개했습니다.

그는 향촌의 유생으로서 지방 사회의 실정을 직접 살피고 제도의 개선을 건의한 인물로 평가됩니다. 그의 묘역은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숙곡리에 있는 《추연우성전묘역》에 함께 있으며, 2003년 4월 21일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2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단양 우씨의 학문적 전통 가운데 조선 후기 경기 지역의 한 흐름을 보여 주는 인물입니다.

그의 상소에는 군덕 10조목과 시폐 10조가 담겨 있었고, 평소 쓰던 《천일록》의 긴요한 부분을 뽑아 올린 것이라고 전합니다. 《천일록》은 농업을 중심으로 하되 자연조건, 농경지의 분포, 주요 작물, 농법, 생산력 등 지역별 특성을 다룬 책으로 연구되었고, 사회 전반에 걸친 여러 정책을 제안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그가 살던 수원 어랑천의 취석실은 학문을 집대성한 곳으로 소개됩니다.

구언에 응한 상소

정조 20년(1796) 구언윤음에 응해 시무책을 상소했고, 순조 4년(1804)에는 《천일록》을 바쳤습니다.

경제관과 신분관

농업을 근본으로 삼되 상업적 농업을 주장했고, 신분 질서의 붕괴에는 반대하면서도 경제적 실력 있는 사람의 신분 이동은 긍정했습니다. 같은 화성의 묘역에는 우성전도 함께 모셔져 있습니다.

묘소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숙곡리의 《추연우성전묘역》(우하영묘역 포함)에 있으며 2003년 4월 21일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2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우하영 자주 묻는 질문

우하영은 어떤 사람인가요?

수원 출신의 조선 후기 학자로 정조와 순조의 구언에 응해 시무책과 《천일록》을 올렸습니다.

《천일록》은 어떤 책인가요?

1804년 순조에게 올린 책으로 중농주의를 바탕으로 하되 상업적 농업을 주장한 내용이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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