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 치악산에 은거한 학자, 이방원(태종)의 스승으로 알려진 『운곡시사』의 저자, 호 운곡
| 생몰 | 1330 ~ 미상 |
| 시대 | 고려 말~조선 초 |
| 본관 | 원주 원씨 |
원천석(元天錫, 1330~?)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걸쳐 산 학자이자 시인으로 본관은 원주입니다. 자는 자정(子正), 호는 운곡(耘谷)입니다. 위키백과는 1330년 음력 7월 8일 출생으로 적고 있으나 몰년은 전하지 않습니다. 할아버지는 정용별장을 지낸 원열, 아버지는 종부령을 지낸 원윤적으로 소개됩니다. 진사에 올랐으나 고려 말 정치의 혼란을 보고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치악산에 들어가 은거했습니다.
그는 흔히 훗날 태종이 되는 이방원의 어린 시절 스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횡성 강림면의 각림사에서 어린 이방원을 가르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이방원이 왕위에 오른 뒤 여러 차례 치악산까지 찾아와 벼슬에 나오기를 청했으나 끝내 응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횡성군 강림면의 '태종대'는 태종이 스승을 찾아 머물렀다고 전하는 곳입니다. 다만 방문 연도를 두고 자료의 서술이 서로 맞지 않는 곳이 있어 정확한 시기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목은 이색 등과 교류하며 성리학을 보급하는 데 역할을 했다고 소개됩니다.
시문집 『운곡시사(耘谷詩史)』가 전하며, 시조 2수도 그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허목의 『기언』에 따르면 그가 지은 야사(野史) 6권이 있었는데, 자손들이 집안에 화가 미칠까 두려워 불태웠다고 합니다. 사후인 1612년(광해군 4)에 원주의 칠봉서원에 배향되었습니다. 종친회 자료에서는 그를 운곡계(운곡공계)의 중시조로 모십니다. 생육신 원호의 어머니가 그의 조카딸이라는 점에서 원주 원씨 안에서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진사에 올랐으나 고려 말 정치의 혼란을 보고 벼슬하지 않고 치악산에 들어갔습니다. 조선이 세워진 뒤에도 벼슬을 받지 않고 고려에 대한 절의를 지켰다고 전합니다.
어린 이방원을 가르쳤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훗날 태종이 된 제자가 여러 차례 찾아와 벼슬을 청했으나 응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위키백과에는 스승 일화 자체는 실려 있지 않고, 태종이 벼슬을 청했다는 내용만 나옵니다.
시문집 『운곡시사』가 전합니다. 허목의 『기언』은 그가 쓴 야사 6권을 자손들이 화를 입을까 두려워 불태웠다고 적고 있어, 당대 정치에 대한 기록이 남지 못한 점이 안타깝게 여겨집니다.
1612년 칠봉서원에 배향되었고, 원주 행구동 묘역에는 창의사가 세워져 있습니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무학대사가 묘자리를 잡아 주었다고 합니다. KBS 드라마 『용의 눈물』에도 등장 인물로 나옵니다.
원주시 행구동 치악산 자락의 운곡 원천석 묘역(강원도기념물 제75호, 2000년 지정)에 있습니다. 묘비에는 '고려국자진사원천석지묘'라 새겨졌고, 1670년 허목이 글과 전서를 지은 묘갈이 있으며, 재사 모운재(1704년 건립, 1984년 개축)와 2006년 건립된 사당 창의사가 묘역 안에 있습니다.
종친회에서는 운곡계(운곡공계)의 중시조로 모십니다.
고려 말 치악산에 은거한 학자이자 이방원(태종)의 스승으로 알려진 원주 원씨 인물로 호는 운곡입니다.
원주시 행구동 치악산 자락에 운곡 원천석 묘역이 있으며 강원도기념물 제75호입니다.
원천석의 시문을 모은 책으로 『운곡시사』라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