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왕 때 첨의중찬에 오른 문신, 『고종실록』 편찬에 참여한 학자, 시호 문순
| 생몰 | 1220 ~ 1287 |
| 시대 | 고려 후기 |
| 본관 | 원주 원씨 |
원부(元傅, 1220~1287)는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원주입니다. 초명은 원공식(元公植), 자는 성지(成之), 호는 족헌(足軒), 시호는 문순(文純)입니다. 고려 건국 때 삼한공신(三韓功臣)에 오른 원극유(元克猷)의 9대손으로 소개되며, 원성백파의 한 줄기에서 이름이 가장 높이 오른 인물로 꼽힙니다. 파 카드에는 10세손으로 적혀 있어 계대를 세는 방식에 따라 자료마다 한 세대 차이가 있습니다. 조부는 원승윤(元承胤), 아버지는 원진(元瑨)이며, 어머니는 창녕 정씨, 외조부는 정희(鄭僖)로 전합니다.
1241년(고종 28) 문과에 급제해 직사관(直史館)에 보임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직사관은 사초를 맡는 자리여서, 뒷날 그가 국사 편찬에 깊이 관여하게 되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1269년(원종 10)에는 추밀원부사가 되었고, 이듬해 세자 심(諶, 뒷날의 충렬왕)이 원나라에 갈 때 동행했습니다. 1273년에는 중서시랑평장사가 되었으며, 충렬왕 초에 찬성사와 판군부사사 등을 지냈습니다. 벼슬은 첨의중찬(僉議中贊)에 이르렀는데, 당시 재상 가운데 으뜸 자리로 이해됩니다.
학자로서의 면모도 뚜렷합니다. 1277년(충렬왕 3) 수국사(修國史)가 되어 유경·김구 등과 함께 『고종실록』을 찬수하라는 명을 받았으나 사고(史藁)를 끝내 완성하지 못했다고 기록됩니다. 1284년에는 감수국사(監修國史)로서 『고금록(古今錄)』 편찬에 참여했습니다. 1287년 2월에 세상을 떠났고 시호는 문순입니다. 아들 원관(元瓘)의 아들이 원충(元忠), 아들 원경(元卿)의 아들이 원선지(元善之)로 이어져 원성백파의 중요한 줄기를 이루었다고 전합니다.
원부는 1241년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해 직사관에 보임되었다고 합니다. 이름은 처음 공식(公植)이었다가 뒤에 부(傅)로 바뀌었다고 전합니다. 이후 승진을 거듭해 1269년 추밀원부사에 이르렀습니다.
1270년 세자 심이 원나라에 갈 때 동행했고, 충렬왕이 즉위한 뒤에는 찬성사 등을 지내며 재상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최종 관직인 첨의중찬은 당시 재상 가운데 으뜸 자리로 이해됩니다.
1277년 유경·김구 등과 『고종실록』을 편찬하라는 명을 받았으나 사고를 완성하지 못했고, 1284년에는 『고금록』 편찬에 참여했습니다. 문신으로서 국사 편찬에 이름이 오른 점이 그의 학자적 면모를 보여 줍니다.
1275년 퇴근 후 식사하던 원부가 찾아온 문생들에게 자신의 정치에 대한 평판을 묻자, 학사 방우선이 '공께서 정치를 하시는 것이 그 성(姓)과 같다고들 합니다'라고 답해 크게 웃었다는 일화가 전합니다. 성 '원(元)'의 뜻을 빗댄 말로 풀이되지만 자료는 따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부인은 파주 염씨(염수장의 딸, 봉성군대부인)이며, 외조부는 정희입니다. 아들 원관의 아들이 원충, 아들 원경의 아들이 원선지입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아들 원관·원경, 손자 원충·원선지로 이어졌다고 전합니다. 원성백파(原城伯派)의 대표 계통입니다.
고려 충렬왕 때 첨의중찬에 오른 원주 원씨 문신으로 시호는 문순이며, 『고종실록』과 『고금록』 편찬에 참여했습니다.
고려 개국공신 원극유를 파조로 하는 원성백파 계통으로 소개됩니다.
1220년에 태어나 1287년 2월에 세상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