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늑약 뒤 안양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탄 열차에 돌을 던진 의거로 알려진 독립운동가

| 생몰 | 1882 ~ 1950 |
| 시대 | 대한제국~일제강점기 |
| 본관 | 원주 원씨 |
원태우(元泰祐, 1882~1950)는 대한제국 말기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로 본관은 원주입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1882년 3월 4일 경기도 과천군 하서면(현 안양시 일대)에서 태어났고 1950년 6월 25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경기도 소개 자료에서는 안양동 출신으로 원태성과 이호순의 둘째 아들이라 하고, 원태근 등 다른 이름으로도 불렸다고 합니다. 2명의 정승을 낸 원주 원씨 유생 집안 출신으로, 옳은 일에 앞장서고 불의에 굽히지 않았다고 평가됩니다.
그의 이름이 알려진 것은 일본의 침략에 맞선 의거 때문입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울분을 이기지 못해 거사를 준비했고, 이토 히로부미가 수원을 둘러보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안양을 지난다는 정보를 얻어 열차가 지나는 곳에서 기다렸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철로에 바위를 놓아 열차를 멈추려 했으나 함께한 사람이 바위를 치워 실패했고, 안양의 서리재 고개에서 돌을 던져 열차 창문을 깨뜨리고 이토에게 상처를 입혔다고 전합니다. 다만 의거 시기를 1905년으로 보는 자료와 1906년으로 쓰는 자료가 갈리고, 상처의 정도나 세부 경위는 자료마다 차이가 있어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의거 뒤 그는 현장에서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겪었고, 경기도 자료는 이 때문에 평생 불구의 몸으로 살았으며 후사를 남기지 못한 채 한국전쟁 때 쓸쓸한 최후를 맞았다고 전합니다. 돌을 다루는 솜씨가 좋아 직접 만든 절구 두 개가 남아 있는데, 하나는 독립기념관에, 다른 하나는 안양시청에 소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안양시는 안양역 입구 벽면에 그의 초상을 새긴 부조를 두었고, 만안도서관에는 의거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위키미디어 공용에는 건국훈장 증서를 찍은 사진이 올라 있으나, 서훈 등급과 연도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경기도 과천군 하서면, 지금의 안양에서 태어났고 원주 원씨 유생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탄 열차에 돌을 던져 창문을 깨뜨렸다는 의거입니다. 1905년설과 1906년설이 엇갈립니다.
현장에서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았고 평생 불구의 몸으로 살았다고 전하며, 해방을 맞았다가 1950년 한국전쟁 중 별세했습니다.
직접 만든 절구가 독립기념관과 안양시청에 있고, 안양역 입구에 초상 부조, 만안도서관에 의거비가 있습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후사를 남기지 못했다고 전합니다.
을사늑약 뒤 안양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탄 열차에 돌을 던져 상처를 입힌 의거로 알려져 있습니다.
1905년으로 적은 자료와 1906년으로 적은 자료가 있어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안양역 입구의 초상 부조와 만안도서관의 의거비가 있고, 직접 만든 절구는 독립기념관과 안양시청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