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성종 때 문신, 남원 양씨 병부공파 파조
| 생몰 | 미상 ~ 미상 |
| 시대 | 고려 |
| 본관 | 남원 양씨 |
양능양(梁能讓)은 고려 성종 때 병부낭중과 동궁내 시강학사를 지낸 인물입니다. 남원 양씨 병부공파(兵部公派)의 파조로, 파 이름은 그가 지낸 병부낭중 벼슬에서 왔습니다. 부산역사문화대전은 그를 고려 태조의 증손서라고 적습니다.
병부공파는 남원 양씨 가운데 가장 큰 파입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남원 양씨의 약 80%가 이 파에 속합니다. 조선 전기의 학자 양성지를 파조로 하는 문양공파도 병부공파의 지파입니다.
이름의 한자는 讓으로 적은 자료가 많지만, 나무위키 옛 판과 surname.info는 能襄으로 적습니다. 생몰년과 묘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1979년 펴낸 『양씨대동보』에는 유격공·대방군·용성군·병부공·성주공파가 함께 참여했습니다. 이 가운데 병부공파는 남원을 본관으로 합니다. 문양공파와 그 지파인 수사공파가 병부공파에서 갈라졌습니다.
2025년 5월에는 병부공파를 포함한 6개 지파 회장이 양씨중앙종친회 통합에 합의했다고 위키백과는 적습니다.
위키백과에 실린 병부공파 항렬 가운데 일부는 28세 煥, 29세 在, 30세 錫, 31세 承·泰, 32세 模·植, 33세 熙·憲입니다. 59세 孝·廷까지 정해져 있습니다.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남원에 병부공파 1~9세의 단(壇)이 있다고 합니다.
병부공파 후손이 남원 양씨의 약 80%를 차지하며, 문양공파와 수사공파가 이 계통에서 나왔습니다.
남원 양씨 병부공파의 파조입니다. 병부공파는 남원 양씨의 약 80%가 속한 가장 큰 파입니다.
梁能讓으로 적는 자료가 많지만, 일부 자료는 梁能襄으로 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