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때 대사헌·부제학을 지내고 『동강집』을 남긴 문신, 호는 동강
| 생몰 | 1588 ~ 1656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함양 여씨 |
여이징(呂爾徵, 1588~1656)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함양, 호는 동강(東江)입니다. 아버지는 여유길, 조부는 여순원이며 부인은 한준겸의 딸입니다. 여우길의 아우 여유길의 아들(여우길의 조카)로, 함양 여씨가 조선 시대 중앙 정계에서 이어진 흐름의 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1624년(인조 2) 문과에 급제해 함경도관찰사·대사헌·부제학·도승지 등을 지냈다고 합니다. 영문 위키백과는 대사헌과 대제학, 공조참판에 이르렀다고 적어 관직 표기가 자료마다 다르므로 병기합니다. 성리학에 밝고 시에 능했으며, 묘비명을 많이 지었고 천문·역산과 서화에도 재능이 있었다고 전합니다. 저서로 『동강집』이 있습니다.
슬하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량의 아들 여성제를 양자로 입양했다는 기록이 있어, 훗날 영의정에 오른 여성제와 이어집니다. 이 사이트에서는 두 사람의 관계를 양자 기록으로 병기합니다.
1624년은 이괄의 난이 일어난 해로, 인조 즉위 직후의 어수선한 정국이었습니다. 이 시기 문과에 급제한 그는 이후 병자호란(1636~1637)을 겪은 조정에서 간관과 학문 관직을 두루 거쳤다고 전해집니다. 자세한 활동은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천문·역산에 밝았다는 평은 당시 사대부 가운데도 드문 면모로 여겨졌고, 서화에도 재능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그가 남긴 묘비명이 많다는 점은 당대 사대부 사이에서 글솜씨를 인정받았음을 보여 줍니다.
묘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양자로 여성제가 이어진 것으로 기록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