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7년 제1차 조선 통신사 정사로 일본에 다녀온 외교관, 호는 치계
| 생몰 | 1567 ~ 1632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함양 여씨 |
여우길(呂祐吉, 1567~1632)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외교관으로 본관은 함양, 자는 상부, 호는 치계(稚溪·痴溪)입니다. 증조부는 여세침, 조부는 여숙, 부는 여순원이며 모친은 이영의 딸입니다. 여칭의 8대손으로 소개되며, 독립운동가 여운형의 11대 선조라고 전해집니다.
1591년(선조 24) 문과에 급제했고, 1596년에는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습니다. 병조정랑·평안도도사·사간원정언·지평·장령·직강 등을 거쳐 1603년 밀양부사를 지냈고 이후 첨지중추부사가 되었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일본을 오가며 끌려간 포로를 데려오는 일에 공을 세웠다고 합니다.
1607년에는 제1대 조선 통신사의 정사로 일본에 다녀왔습니다. 후임 정사는 오윤겸입니다. 이후 1614년 진위사로 명에 갔고, 강원도관찰사, 1618년 공홍도(충청도)관찰사를 지냈으며 1623년 경주부윤으로 부임했습니다. 1632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1607년의 사행은 임진왜란 뒤 일본과 국교를 다시 여는 첫 통신사로, 일본의 국서에 답하고 끌려간 조선인을 데려오는 일을 함께 맡아 '회답겸쇄환사'라 불렸습니다. 이때 정사 여우길과 부사 경섬, 종사관 정호관이 일본에 다녀왔고 포로 1,400여 명이 돌아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조선 통신사는 1811년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는 문관으로 중앙의 정랑·언관 직을 지냈고, 지방 수령(밀양부사, 연안부사)과 도 단위 관찰사, 안무사 등을 두루 맡았습니다. 명나라 사행도 1596년과 1614년 두 번 다녀와, 임진왜란 후 대외 관계의 현장에 서 있던 관료로 평가됩니다.
묘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여규형·여운형 등이 후손 계통에 속한다고 소개됩니다. 여성제는 손자로 소개되기도 하지만 양자 기록과 함께 자료가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