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귀의 아들, 아버지·아들과 3대 대제학을 이룬 문신 (호 백주, 시호 문정)
| 생몰 | 1595 ~ 1645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연안 이씨 |
이명한(李明漢, 1595~1645)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연안, 자는 천장(天章), 호는 백주(白洲), 시호는 문정(文靖)입니다. 할아버지는 삼등현령 이계, 아버지는 좌의정 이정귀, 어머니는 예조판서 권극지의 딸이며, 부인은 박동량의 딸 반남 박씨로 위키백과는 적고 있습니다. 1610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616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했으나, 인목대비 폐모론 때 정청에 참여하지 않아 파직된 일이 있습니다.
인조반정 뒤 경연시독관과 이조좌랑을 거쳐 어사로 관동에 나가 서리의 폐해와 백성의 고통을 살폈다고 합니다. 사가독서를 두 차례 했고 홍문관에서 일했으며, 이괄의 난 때에는 인조를 공주로 모시고 이식과 함께 팔도에 내릴 교서를 지었습니다. 응교·사간·대사간·대사성·부제학·도승지·대사헌을 지낸 뒤 1641년 무렵 홍문관과 예문관의 대제학을 겸하고 이조판서에도 올랐습니다. 아버지 이정귀, 아들 이일상과 함께 3대가 대제학을 지내 이름이 높습니다.
그의 삶에서 가장 힘든 시기는 병자호란 뒤입니다. 1643년 척화파로 지목되어 이경여, 신익성 등과 함께 심양에 억류되었고, 이듬해에는 세자이사로서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를 모시고 돌아왔습니다. 1645년에는 명나라와 내통한 자문을 작성했다는 혐의로 다시 청나라에 잡혀갔다가 풀려난 뒤 예조판서가 되었으나 그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심양에 억류된 울분을 담은 시조 6수가 전하고, 시문집 『백주집』 20권은 1647년 후손이 간행했으며 권16에는 1640년 금강산을 여행하고 쓴 기행문이 실려 있습니다.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노모를 모시고 피난하다 배에 오른 지인에게 노모를 태워 달라고 간청했으나 거절당했는데, 난이 끝난 뒤 친척이 그 사람이 누구냐고 묻자 이름을 잊었다고 답했다는 일화도 전합니다.
이명한은 아버지 이정귀, 아들 이일상과 함께 3대가 대제학을 지낸 것으로 이름이 높습니다.
1643년 척화파로 지목되어 심양에 억류되었고, 그때의 울분을 담은 시조 6수가 전합니다. 이듬해 소현세자를 모시고 돌아왔습니다.
묘소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아들 이일상·이가상·이만상·이단상과 딸 1명을 두었고, 이일상이 대제학을 지냈습니다.
이정귀의 아들로, 호는 백주, 시호는 문정이며 대제학과 이조판서를 지낸 연안 이씨 문신입니다.
1643년 척화파로 지목되어 억류되었고, 1645년에는 명나라와 내통한 자문 혐의로 다시 청나라에 잡혀갔다가 풀려났습니다.
『백주집』 20권이 1647년 후손에 의해 간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