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 이씨의 시조, 신라 말 성주 일대의 호족으로 고려 태조 왕건을 도운 공신, 성산백

| 생몰 | 미상 ~ 미상 |
| 시대 | 신라 말·고려 초 |
| 본관 | 성산 이씨 |
이능일(李能一, 생몰 미상)은 성산 이씨(星山李氏)의 시조로 모셔지는 신라 말·고려 초의 호족입니다. 『디지털성주문화대전』은 그가 본래 이름이 능(能) 또는 능필(能弼)이었다가 고려 태조를 도와 삼한 통일에 기여했다는 뜻으로 '일(一)'자를 받아 능일이 되었고, 성산백(星山伯)에 봉해지면서 후손이 성산 이씨가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신라 말 본피현(지금의 성주)의 호족이었으며, 고려 건국의 개국공신이었기 때문에 성주에 계속 거주할 수 있었다고도 풀이됩니다.
위키백과는 925년(태조 8) 견훤 정벌에 참여해 본부장군이 되었고, 최언과 함께 민병 600여 명을 이끌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후 약 12년간 왕건을 도와 후삼국 통일에 공을 세웠고, 936년 통일 후 공신으로 책봉되어 이름에 '일'자가 더해졌다고 합니다. 940년에는 개경 신흥사 공신당에 화상이 그려졌으며, 주군 제도를 개편할 때 그의 출신지 일대가 경산부로 묶이고 성산군이 봉지가 되어 성산백에 봉해졌다는 것이 본관 성산의 유래입니다. 나무위키는 조물성 전투와 일리천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고 전하나, 이 점은 다른 자료로 교차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디지털성주문화대전』은 이능일이 태조의 딸 정순궁주와 혼인해 부마가 되었고 벼슬이 사공(司空)에 이르렀다고 적고 있으나, 이능일계와 관계가 없는 이무재계 등 다른 계통도 있다는 설명이 있어 계보에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성주읍 경산리에 살았고, 5세손 이견수 때 벽진면 봉계리 정곡으로 옮겨 갔다고 하며, 성주읍 경산리의 경원사(景遠祠)에서 시조를 제향합니다. 이견수의 아들 이광의 후손은 인주공파·김산공파·정언공파·봉익공파로, 둘째 이직의 후손은 기국공파로 갈라졌다고 전합니다. 1914년 대종회에서 시조의 성향(姓鄕)을 따라 신라 때 지명인 성산을 본관으로 정했습니다.
본래 능 또는 능필이었던 이름에 '일'자를 받아 능일이 되었고, 성산백에 봉해져 후손이 성산을 본관으로 삼았습니다.
925년 견훤 정벌에 참여해 본부장군이 되고 12년간 왕건을 도왔다고 합니다.
이무재계 등 이능일계와 무관한 계통도 있다는 설명이 있어 계보에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
시조의 묘소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성주읍 경산리의 경원사에서 제향한다고 합니다.
5세손 이견수 이후 아들 이광(인주공파·김산공파·정언공파·봉익공파)과 이직(기국공파)으로 갈라졌다고 전합니다.
신라 말 성주의 호족으로 고려 태조를 도운 이능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