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자·시인, 제6·7대 국회의장(역대 최장 재임 7년 6개월), 호는 일송

| 생몰 | 1906 ~ 1989 |
| 시대 | 현대 |
| 본관 | 성산 이씨 |
이효상(李孝祥, 1906~1989)은 학자이자 시인이며 정치인으로 본관은 성산, 아호는 일송(一松)입니다. 1906년 1월 14일 대구에서 태어났고 천주교 신자이며 세례명은 아길로입니다. 일본에 유학해 1930년 도쿄제국대학 독문과를 졸업했고, 1936년 『가톨릭청년』에 시 「기적」을 발표하며 등단했습니다. 이후 문학 연구 논문과 시집을 냈으며, 시집으로 『사랑』·『안경』·『산』·『바다』·『인생』, 저서로 『나의 강산아』·『교육의 근본문제』·『인간문제』, 역서로 『샤르댕』(전 6권) 등이 알려져 있습니다.
1945년 경상북도 학무국장을 지냈고 1952년 경북대학 문리대 교수·문리대학장을 역임했으며, 1960년 참의원에 당선되었으나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사퇴했습니다. 이후 영남학원 이사장이 되었습니다. 1963년 12월 제6대 국회의원으로 국회의장에 선출되어 1971년 6월까지 제6·7대 국회의장을 지냈고, 이는 역대 국회의장 가운데 가장 긴 7년 6개월의 재임입니다. 1973년 제9대, 1979년 제10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1973년 공화당 의장서리 겸 당무위원, 1979년 공화당 총재 상임고문을 지냈습니다. 서독 1급 대십자훈장, 교황청 대십자기사훈장 등을 받았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박정희 정권의 핵심 인물이었고, 박정희 대통령 선거 때 영남 지역주의를 자극하는 발언으로 지역감정을 조장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일본 유학과 1945년 경북 학무국장 취임을 근거로 친일 여부를 단정할 수는 없으므로 이 글에서는 친일 태그를 붙이지 않고 사실만 적습니다. 가족으로는 장남 이문호(전 경북대 철학과 교수), 차남 이문희(로마 가톨릭 대주교), 삼남 이문조(전 영남대 교수)가 있습니다. 한국어 위키백과 문서에는 출처가 불분명한 비하성 표현이 섞여 있어 그 부분은 인용하지 않았습니다.
도쿄제국대학 독문과를 졸업하고 1936년 시로 등단했으며 경북대 문리대학장을 지냈습니다.
1963년 12월부터 1971년 6월까지 제6·7대 국회의장을 맡아 역대 최장 재임을 기록했습니다.
묘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장남 이문호, 차남 이문희(대주교), 삼남 이문조.
1963년 12월부터 1971년 6월까지 7년 6개월로 역대 최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