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개마을 출신 성리학자·문신, 제주목사와 공조판서를 지낸 응와, 시호 정헌

| 생몰 | 1792 ~ 1871 |
| 시대 | 조선 후기 |
| 본관 | 성산 이씨 |
이원조(李源祚, 1792~1871)는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문신·시인으로 본관은 성산(星山), 초명은 이영조, 자는 주현(周賢), 호는 응와(凝窩)입니다.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한개마을)에서 태어났고, 사도세자의 호위 무사였던 이석문의 증손입니다. 아버지 이형진의 둘째로 태어나 큰아버지 이규진에게 입양되었으며, 입재 정종로의 문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개마을에서는 조상들이 성주읍내에서 대산리로 옮겨 왔고, 1721년 고조부 이이신이 지금의 응와종택 부근에 자리 잡았다고 합니다.
1809년 향시에 두 번 합격하고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1837년 정언이 되어 영남의 흉년 구제책을 상소했습니다. 1840년 강릉부사, 1841년 제주목사로 부임했고, 철종 때 병조참판을 거쳐 1850년 경주부윤이 되었으나 암행어사의 탄핵으로 삭직되었다가 재기용되었습니다. 1852년 이후 대사간에 여러 차례 임명되었으며 대사헌·호군을 지냈고 1865년 한성부판윤, 1869년 공조판서, 1871년 판의금부사에 올랐습니다. 철종이 그를 특별히 아껴 생부와 조상들에게 여러 차례 증직 교지가 내려졌다고 합니다.
제주목사 재직 중에는 유배 중이던 김정희와 교유했고 제주 기록을 남겼다고 전합니다(책 이름은 자료에 따라 『탐라록』 또는 『탐라집』으로 달라지며, 위키백과는 『응와문집』·『응와잡록』을 저서로 소개합니다). 만년인 1851년 귀향해 성주 가천면의 포천계곡에 만귀정(晩歸亭)을 짓고 독서와 자연 속에서 지냈으며, 「포천구곡」이라는 시로 계곡의 이름이 알려졌습니다. 조카 이진상에게 성리학을 권한 숙부로서 한주학파가 싹트는 배경을 만들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시호는 정헌(定憲)입니다. 『응와문집』은 1926년에 정리·간행되었다고 합니다.
1837년 정언, 1841년 제주목사, 1850년 경주부윤, 1865년 한성부판윤, 1869년 공조판서를 지냈습니다.
1851년 귀향해 포천계곡에 만귀정을 짓고 독서하며 지냈습니다.
묘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한개마을 응와종택과 성주 가천면의 만귀정(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62호)이 그와 관련된 유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증조부 이석문, 조부 이민겸, 생부 이형진, 양부 이규진. 조카가 한주 이진상입니다.
이원조는 이진상의 숙부로, 이진상이 성리학에 전념하도록 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