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 외교 · 대통령장(1962)

| 생몰 | 1884 |
| 시대 | 근현대 |
| 본관 | 전주 이씨 |
헤이그 특사로 파견되어 각국 언론에 한국의 처지를 호소하였고, 이후 연해주에서 항일운동을 이어갔습니다.
이위종(李瑋鍾, 1884~?)은 1884년 1월 9일 한성부에서 대한제국 외교관 이범진(李範晉)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영어·러시아어·프랑스어에 능통했던 거의 유일한 한국인으로 알려졌으며, 1902년 대한제국 외교관으로 임용되었습니다. 1907년 고종의 밀지를 받고 이준(李儁)·이상설(李相卨)과 함께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로 파견되었으나, 일본의 방해로 공식 참석은 거부당했습니다. 대신 각국 기자단의 도움을 받아 한국의 처지와 일본의 침략 행위를 규탄하는 연설을 하였습니다. 이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해 최재형(崔在亨)·이범윤(李範允)·안중근(安重根) 등과 동의회(同義會)를 조직해 국내 진공 작전 등 항일운동을 이어갔습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습니다.
출처: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유공자 공적정보(공공데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