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 이조판서·양관대제학, 정조의 측근
| 생몰 | 1762년 ~ 1801년 |
| 시대 | 조선 후기 |
| 본관 | 남원 윤씨 |
윤행임(尹行恁, 1762~1801)은 정조 때 이름을 떨친 문신으로 호는 석재(碩齋)이며 본관은 남원입니다. 위키백과의 남원 윤씨 항목은 그를 이조판서와 양관대제학을 지낸 인물로 정리하고, 시파의 주요 인물로 꼽기도 합니다. 윤정현의 아버지입니다. 이 사이트는 그의 생몰년을 일반 자료에 따라 적었으며 위키백과에서는 직접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노대환의 학술 논문은 그를 정조의 인재 양성 정책이 낳은 대표 사례로 평가합니다. 스무 살에 과거에 합격해 이듬해 초계문신으로 뽑혔고, 규장각 대교와 비변사 부제조 등을 지냈다고 합니다. 정조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벽파 정권이 그를 도승지로 기용했으나, 천주교 대책과 은언군·홍낙임 처벌 문제를 놓고 벽파와 갈등이 깊어져 관계가 깨졌다고 설명합니다.
학문에서는 한원진의 호론 계열 학풍을 이어 인물성이론을 주장했고 육왕학을 비판했다는 연구가 여러 편 있습니다. 신지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며 《사물요의》를 썼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1801년 신유년의 정국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알려져 있으나, 구체적 경위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문집과 《신호수필》 등의 저술은 학계에서 연구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초계문신은 정조가 젊은 문신을 가려 뽑아 규장각에서 재교육한 제도입니다. 윤행임이 스무 살에 급제하고 이듬해 이 제도에 뽑혔다는 서술은 정조의 총애를 받은 젊은 관료였음을 보여 줍니다. 구체적 연도는 논문 요약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조판서 윤정현의 아버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