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김씨(扶安 金氏) — 신라 경순왕의 맏아들로 전해지는 태자 김일을 시조로 하고, 고려의 문신 김구를 중시조로 모시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본관 부안은 전북 부안군이며, 부령 김씨라고도 불립니다.
신라 경순왕의 맏아들로 전해지는 태자 김일을 시조로 하고, 고려의 문신 김구를 중시조로 모시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본관 부안은 전북 부안군이며, 부령 김씨라고도 불립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부안 김씨 인구는 약 69,157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김씨라도 본관(부안)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좌승지공파, 시승공파, 소윤공파, 군사공파, 소감공파, 낭장공파
좌승지공파는 이부상서·좌승지를 지낸 김식을 파조로 한다고 디지털부안문화대전에 소개됩니다. 김식은 김구의 아들 김여우의 아들로 정리됩니다.
파의 갈래와 세계는 문헌·문중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족보로 확인하세요.
시승공파는 김용수를 파조로 합니다. 부안군 자료는 김용수를 대제학공의 두 아들 중 한 명(형은 중장랑공 김인정)으로 적으며, 당진 지역 자료는 김인정의 아들 4형제에서 시승공파가 갈라졌다고 달리 설명합니다.
파의 갈래와 세계는 문헌·문중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족보로 확인하세요.
소윤공파는 김세영을 파조로 합니다. 그 아래 종사랑공파, 장사랑공파, 진사공파, 승의랑공파 등 4개 소파가 있다고 소개됩니다. 당진 자료는 김인정의 아들 4형제 중 한 갈래로 설명합니다.
파의 갈래와 세계는 문헌·문중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족보로 확인하세요.
군사공파는 김광서를 파조로 하며, 시직공파·승지공파·지평공파·사직공파·직장공파 등 5개 소파가 있다고 합니다. 제각 취성재가 김광서를 모시며, 곁에 김직손의 신도비문 비각이 있다고 전해집니다.
파의 갈래와 세계는 문헌·문중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족보로 확인하세요.
소감공파는 김광신을 파조로 하는 갈래로 소개됩니다. 당진 자료는 김인정의 아들 4형제 중 한 갈래로 설명합니다. 세부 세계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파의 갈래와 세계는 문헌·문중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족보로 확인하세요.
낭장공파는 김광구를 파조로 하는 갈래로 소개됩니다. 세부 세계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파의 갈래와 세계는 문헌·문중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족보로 확인하세요.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김구(고려 문신·중시조), 김여우(고려 형부상서), 김직손(조선 정언), 김계(조선 문신), 김횡(조선 학자), 김명(조선 학자)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부안 김씨(扶安 金氏)는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을 본관으로 하며 부령 김씨(扶寧 金氏)라고도 불립니다. 신라 경순왕의 맏아들로 알려진 태자 김일(金鎰)을 시조로 삼고, 더 거슬러 올라가 김알지를 비조(원시조)로 모십니다. 935년 경순왕이 고려에 귀부하려 하자 김일이 이에 반대하고 개골산(금강산)에 들어가 생을 마쳤다고 전해지며, 후손들은 고려의 보복을 피해 산중에 숨어 살았다고 합니다.
이후 고려 선종 때 후손 김경수가 문과에 급제해 이부상서에 올라 세상에 나왔다고 전합니다. 김경수의 아들 김춘이 부령부원군에 봉해지면서 부령을 관향으로 삼았고, 1416년(태종 16) 부령현이 보안현과 합쳐져 부안현이 되면서 '부안 김씨'로 불리게 되었다고 설명됩니다. 시조에서 김경수에 이르는 약 150년의 세계(世系)는 실전되었다고 하며, 김경수는 4세로 정리되는 자료가 많습니다.
가문을 크게 일으킨 인물은 문정공 김구(金坵, 1211~1278)로, 중시조로 모셔집니다. 다만 세대 수는 자료마다 다릅니다. 부안군 쪽 자료와 나무위키는 김경수를 4세로 적는 반면, 당진 지역 자료는 김구를 시조의 9세손으로 적고 있어 세대 계산이 서로 맞지 않습니다. 족보와 파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족보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으로 부안 김씨는 69,157명으로 집계됩니다. 위키백과는 집성촌으로 부안군, 정읍시, 남원시, 장수군, 전라남도 곡성군을 들고 있습니다. 디지털부안문화대전은 대표 세거지로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를 들며, 1675년경 김홍원이 우동리 일대의 토지와 집을 사들이고 손자 김반이 줄포에서 우동마을로 옮겨 집성촌이 이루어졌다고 설명합니다. 같은 자료에 따르면 2015년 부안군 거주자는 1,103명이며, 전주·남원·나주 등에도 일부 집성을 이루었으나 1960년대 이전에 많던 집성촌은 대부분 사라지는 추세라고 합니다. 충남 당진시 대호지면 두산리(두릉골)도 별도의 세거지로 알려져 있는데, 20세손 김선이 서당을 세워 주민을 가르친 것이 집성촌의 배경이었다고 전합니다.
고려 시대 부안 김씨의 대표 인물은 김구입니다. 아버지는 상서우복야를 지낸 김의로 소개되며, 김구는 어린 나이에 학문으로 이름을 얻어 1232년경 과거에 급제한 것으로 전해집니다(급제 연령은 자료마다 달리 적힙니다). 초명은 백일(百鎰), 자는 차산(次山), 호는 지포(止浦)입니다. 제주판관 시절 돌담을 쌓아 농지를 지키는 데 힘썼다는 이야기가 제주 공덕비와 함께 전해집니다.
원나라에 서장관으로 다녀온 뒤 한림원에서 오래 근무했고, 외교 문서에 뛰어나 신임을 얻어 중서시랑평장사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문집으로 『지포집』이 전하는데 권수는 자료에 따라 3권 또는 6권으로 다르게 적힙니다. 아들 김여우는 형부상서를 지냈고 충선(忠宣)이라는 시호로 소개되며, 그 아들 김각과 김식 등으로 가문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조선 전기에는 김직손이 정언을 지내며 청렴하고 강직하기로 이름났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손자 김계(1528~1574)는 1552년 문과에 급제해 승지, 충청병사, 한성부 우윤 등을 지냈고, 성절사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중국어에 능했다고 합니다. 강관으로서 이황, 김인후, 기대승, 이이 등과 학문을 논했다고 하며 문집 『운강선생유고』가 있습니다.
같은 시기 부안에서는 형제 김횡(1541~1590)과 김명(1545~1619)이 학문으로 이름을 얻었고, 두 사람 모두 유천서원에 배향되었습니다. 이후 조선 후기에는 우동리 집성촌을 중심으로 후손이 이어졌습니다. 디지털부안문화대전에는 이 가문에서 생원·진사 108인, 문과 급제 28인, 무과 급제 55인, 공신 30인, 서원 배향 23인이 나왔다고 정리되어 있습니다.
디지털부안문화대전에 따르면 부안 김씨는 13개 대파와 53개 소파로 나뉩니다. 주요 파로는 김식 계열의 좌승지공파, 김용수 계열의 시승공파, 김세영 계열의 소윤공파, 김광서 계열의 군사공파, 김광신 계열의 소감공파, 김광구 계열의 낭장공파가 소개됩니다. 소윤공파 아래에는 종사랑공파·장사랑공파·진사공파·승의랑공파가, 군사공파 아래에는 시직공파·승지공파·지평공파·사직공파·직장공파가 있다고 합니다.
한편 당진 지역 자료는 김인정의 아들 4형제에서 소윤공파·군사공파·소감공파·시승공파가 나뉘었다고 적어 부안군 자료와 파조 설명이 다릅니다. 또 두산리 부안 김씨는 사간공파·첨정공파·사헌공파·참의공파의 4개 파로 나뉜다고 합니다. 파의 수와 세계는 문헌마다 달라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고려의 김구과 김여우, 조선의 김직손·김계·김횡·김명이 사료에서 확인되는 대표 인물입니다. 위키백과는 이 밖에 김홍원, 김익복, 김수복, 김택술, 김병술, 김종빈 등을 주요 인물로 나열하지만, 일부는 다른 위키백과 문서에서 본관이 부안 김씨로 확인되지 않아(예: 김택술은 도강 김씨로 표기) 같은 이름의 다른 인물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현대 인물은 김희철(정치인), 김병관(1973년생) 등이 이름만 나열되어 있습니다.
연곡리의 석동산은 부안 김씨의 선산으로 알려져 있고, 시제를 모시는 제각이 다섯 곳 있다고 합니다. 그중 군사공 김광서를 모시는 취성재(부안읍 석동길 37 일원)는 율곡 이이가 지은 김직손의 신도비문을 모신 비각이 곁에 있어 호남 제일의 제각으로 평가된다고 합니다. 김구의 묘소와 경지재, 신도비, 비각은 변산면 운산리 일원에 있으며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고, 부안읍 선은리에는 지포 김구 유허비가 있습니다.
서원으로는 김구와 김여우를 모신 도동서원(연곡리)이 있었으나 훼철되어 터만 남았고, 김계도 이곳에 배향되었다고 합니다. 보안면 영전리의 유천서원에는 김횡, 김명, 김택삼이 배향되어 있습니다. 김명은 1893년 후손들이 장성에 유허비를 세웠다고도 전합니다.
부안 김씨는 1584년(선조 17) 『만력갑신보』를 간행했는데, 82쪽 4단의 목판본으로 우리나라 초기 족보의 하나로 연구 가치가 높다고 평가됩니다. 종친회와 항렬 표는 이번에 확인한 자료에서 찾지 못했으므로, 각 파 종중이나 보유한 족보에서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부안 김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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