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 배씨(達城 裵氏) — 대구(옛 달성)를 본관으로 하며 대구 배씨라고도 불리는 배씨로, 고려 때 달성군에 봉해졌다고 전하는 배운룡을 시조로 하고 배정지·배천경 등으로 가문이 이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구(옛 달성)를 본관으로 하며 대구 배씨라고도 불리는 배씨로, 고려 때 달성군에 봉해졌다고 전하는 배운룡을 시조로 하고 배정지·배천경 등으로 가문이 이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달성 배씨 인구는 약 77,942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배씨라도 본관(달성)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회은공파는 호가 회은(晦隱)인 배문우(裵文祐)를 파조로 하는 것으로 소개됩니다. 배문우는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보문각 직제학에 올랐고, 조선이 개국하자 아우 배을서와 함께 두문동에 들어가 절개를 지켰다고 전해집니다. 일부 자료는 그를 달성 배씨 11세로, 고부군 배인경의 부친으로 적고 있으나 세대와 계대는 자료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청정공파는 호가 청정(淸靖)인 배을서(裵乙瑞)를 파조로 하는 것으로 소개됩니다. 배을서는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예부상서에 올랐고, 정몽주와 뜻을 같이했으며 조선 개국 후에는 은거하여 벼슬을 받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일부 자료는 그를 11세로 적습니다. 세대는 자료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고부군파는 고부군에 봉해진 배인경(裵仁敬)을 파조로 하는 것으로 소개됩니다. 배인경은 호가 만은(晚隱)이며 길재의 문하에서 배웠고, 태종 때 학행으로 천거되어 우간의대부를 지냈으며 1420년 고주 수령으로 선정을 베풀어 1440년 고부군에 봉해졌다고 전해집니다. 일부 자료는 그를 12세로 적고 배문우의 아들로 소개합니다. 성주 배씨의 배인경과는 동명이인이므로 구별해야 합니다.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배운룡(시조), 배정지(고려 무신), 배중손(삼별초 지도자), 배천경(고려 공신), 배을서·배문우(고려 말 은거 문신), 배사원(조선 문신), 배승무(임진왜란 순절), 배상옥(동학 대접주), 배상면(국순당 창업가), 배순훈(대우전자 사장)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달성 배씨(達城 裵氏)는 대구 배씨(大邱 裵氏)라고도 불리며, 관향은 대구(옛 달성)입니다. 신라 건국 때 금산가리촌장이었다고 전하는 지타(祗沱)를 배씨 전체의 비조(득성조)로 받들고, 고려 개국공신 배현경(裵玄慶)을 도시조로 삼는 것으로 소개됩니다. 달성 배씨의 시조(발상조)는 고려 때 달성군(達城君)에 봉해졌다고 전하는 배운룡(裵雲龍)이며, 나무위키는 중시조로 배손적(裵孫迪)을 적고 있습니다.
배운룡의 부친은 삼중대광 가락군을 지낸 배사혁으로 전해지며, 배사혁의 아들들에게서 여러 배씨 본관이 갈라졌다고 합니다. 다만 배현경과 배운룡 사이의 세대 수는 자료마다 달라(현손 배사혁의 아들로 보는 설명, 6세손으로 보는 설명 등) 족보에서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무위키는 같은 문서 안에서 시조와 중시조에 관한 서술이 엇갈린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대구는 신라 때 달구화현·달구벌로 불리다 757년 대구현이 되었고, 이후 달성이라는 이름이 함께 쓰였습니다. 위키백과는 시조 배운룡이 달성군에 봉해졌다(또는 추증되었다)는 데서 후손이 달성(대구)을 관향으로 삼았다고 설명합니다. 이후 배정지의 아들 배천경이 1354년(공민왕 3) 달성군에 봉해졌다는 기록도 전합니다. 대구 배씨와 달성 배씨는 표기만 다른 같은 계통으로 통계에서 따로 집계됩니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대구 배씨 38,589명, 달성 배씨 39,353명으로 합계 77,942명이 집계되었습니다.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읍천리에 국내에서 가장 큰 집성촌이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 밖에 대구 달성군, 경북 칠곡군 지천면 영오리, 전북 고창군 해리면, 순창군 유등면, 광주 광산구, 전남 무안군 청계면, 영암군 시종면 등이 집성촌으로 소개됩니다.
배운룡의 후손으로 평장사 배숙, 문하시승 배구, 평장사 배문진 등이 전해지고, 7세손 배영은 민부전서를 지낸 것으로 소개됩니다. 가문의 중흥조로는 배영의 아들 배정지(裵廷芝, 1259~1322)가 꼽히는데, 충렬왕 때 적을 격파한 공으로 중랑장에 오르고 1318년 탐라의 반란을 평정하여 밀직부사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아들 배성경은 홍건적과 싸우다 순절했고, 배천경·배함경도 공신에 올랐다고 전해집니다. 한편 몽골에 맞서 삼별초 항쟁을 이끈 배중손도 달성 배씨 인물로 소개되지만, 계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고려 말에는 배을서와 배문우 형제가 조선 개국 후 벼슬을 사양하고 은거(두문동)했다고 전합니다. 조선 전기에는 배인경(고부군), 배두유, 배효명, 배상경 등이 학행으로 알려졌고, 세조 때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병조판서에 추증된 배사원이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에서 순절한 배승무와 말기 동학농민운동의 무안 대접주 배상옥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1740년 경신수교와 1764년 갑신합보를 거쳐 여러 계통이 하나의 족보로 정리되었다고 합니다.
달성 배씨는 판서공파, 병판공파, 청정공파, 회은공파, 고부군파, 직제학공파 등으로 나뉘는 것으로 소개되며, 배정지의 후손들이 여러 파로 갈라졌다고 전해집니다. 이 가운데 회은공파(배문우), 청정공파(배을서), 고부군파(배인경)는 호·봉작과 파명이 일치하여 파조를 비정할 수 있으나, 판서공파·병판공파·직제학공파의 파조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세계와 항렬은 대동보와 각 파보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곤산 배씨(昆山 裵氏)는 위키백과에서 곤양 배씨 항목에 함께 소개되며, 곤양 배씨의 시조 배맹달(달성군 13세손)이 1467년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곤산군에 봉해졌다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설명됩니다. 2015년 인구는 곤양 배씨 7,546명, 곤산 배씨 1,556명입니다.
고려의 배정지·배중손·배천경, 조선의 배사원·배승무·배상옥이 대표적입니다. 현대에는 국순당 창업가 배상면, 대우전자 사장 배순훈, 대법원장서리 배정현, 국가안전기획부장 배명인, 상명대학교 설립자 배상명 등이 소개됩니다. 배정현은 성주 배씨 항목에도 오르는 등 문헌별 본관 표기가 달라 확인이 필요합니다.
전남 진도군 임회면의 남도석성·용장성·정충사는 배중손과 삼별초 항쟁을 기리는 곳으로 알려져 있고, 경산시 자인면 읍천리에는 학명재가 있습니다. 전남 화순군 도곡면 대곡리의 효열 정려문, 김제시의 경모재·영사재, 무안군 청계면의 청천재(배상옥 관련), 나주 무열사(전남 기념물 제57호), 고성 수림서원 등이 달성 배씨 관련 유적으로 소개됩니다.
이번 조사에서 대종회 공식 누리집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계파와 세계, 항렬(30세부터 50세까지의 항렬자가 알려져 있음)은 문헌과 족보에 따라 차이가 있으므로, 보유한 족보와 종친회 자료로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달성 배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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