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박씨(咸陽 朴氏) — 신라 경명왕의 아들 박언신을 시조로 전하는 본관입니다.
신라 경명왕의 아들 박언신을 시조로 전하는 본관입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함양 박씨 인구는 약 163,610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박씨라도 본관(함양)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소감공파, 문원공파, 함양군파, 밀직부사공파, 어사공파, 중랑장공파, 오한공파, 영상공파, 지평공파, 지밀직공파, 부윤공파, 판서공파
소감공파는 응천군 박신유(朴臣蕤)의 맏아들로 검교군기소감을 지낸 박지문(朴之文)을 파조로 합니다. 박신유는 중시조 박선(朴善)의 현손으로 고려 고종 때 나주에서 이연년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응천군에 봉해졌습니다.
박신유의 여섯 아들에게서 나온 여섯 파를 이름자를 따서 흔히 '육지파(六之派)'라 부르며, 소감공파는 그 첫째 파입니다.
문원공파는 박신유의 둘째 아들로 위위윤을 지낸 박지빈(朴之彬)을 파조로 합니다. 경상북도 성주의 함양 박씨가 이 파의 후손으로, 박선의 9세 박전(朴琠)이 선남면 오도리에 자리 잡은 뒤 선남면·초전면 일대에 세거해 왔습니다.
독립운동가 박열이 이 파 출신으로 소개됩니다.
함양군파는 박신유의 셋째 아들 박지량(朴之亮, ?~1292)을 파조로 하며, 판삼사사공파라고도 부릅니다. 박지량은 1274년과 1281년 여몽연합군의 일본 원정에 참전해 원나라로부터 무덕장군 관군천호를 받았고, 이후 판삼사사·동북면병마사 등을 지냈습니다.
1290년 합단적이 침입하자 좌군만호로 이를 물리쳤으며, 1291년 의성으로 내려가 이듬해 세상을 떠나 의성 함양 박씨의 입향조가 되었습니다.
밀직부사공파는 박신유의 넷째 아들 박지수(朴之秀)를 파조로 하며, 부사공파라고도 부릅니다. 함양 박씨 육지파의 넷째 파입니다.
어사공파는 박신유의 다섯째 아들 박지온(朴之溫)을 파조로 하며, 감찰어사공파라고도 부릅니다. 함양 박씨 육지파의 다섯째 파입니다.
중랑장공파는 박신유의 여섯째 아들 박지영(朴之穎)을 파조로 하는 파로, 함양 박씨 육지파의 막내 파입니다.
오한공파는 박성건(朴成乾)을 파조로 소개하는 파로, 대부분 전남 강진·영암·해남에 거주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파조의 생몰과 세대는 공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영상공파는 박경(朴經)을 파조로 소개하는 파입니다. 파조의 세대와 행적은 공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지평공파는 박번(朴蕃)을 파조로 소개하는 파입니다. 파조의 세대와 행적은 공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지밀직공파는 박문재(朴文載)를 파조로 소개하는 파입니다. 파조의 세대와 행적은 공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부윤공파는 박원택(朴元澤)을 파조로 소개하는 파입니다. 파조의 세대와 행적은 공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판서공파는 박규(朴圭)를 파조로 소개하는 파입니다. 파조의 세대와 행적은 공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박신유(고려 응천군·육지파의 아버지), 박충좌(고려 후기 문신·함양부원군), 박습(조선 초 병조판서·형조판서), 박열(독립운동가), 박동완(독립운동가, 민족대표 33인), 박주영(축구선수)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유공자 공적정보(공공데이터)를 참고한 함양 박씨 계열 독립유공자입니다. 이름을 누르면 공적을 볼 수 있습니다.
함양 박씨(咸陽 朴氏)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를 원시조로 하고, 신라 경명왕의 셋째 아들 속함대군 박언신(朴彦信)을 시조로 전하는 본관입니다. 속함(速咸)이 함양으로 고쳐지면서 관향을 함양으로 삼았다고 하며, 시조와 후대 사이의 선계는 문헌이 유실되어 밝히기 어려워 고려의 예부상서를 지내고 추밀원사에 추증된 박선(朴善)을 중시조로 모십니다. 따라서 박언신~박선 사이 계보는 전승으로 이해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박씨 본관 가운데 인구 기준으로 반남 박씨 다음인 2위권으로 소개되며, 흔히 '8박' 중 하나로 꼽히고 벌열(과거 급제자·재상·세력)로는 3위쯤으로 평가된다고 합니다. 경명왕의 여덟 대군 전승에서는 셋째 속함대군 계통으로, 같은 계통에 삼척 박씨와 군위 박씨가 있다고 전해집니다. 이 팔대군 설은 족보 전승이며, 반남 박씨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통계청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약 163,610명(61위)으로, 2000년 123,688명에서 늘었습니다. 파마다 분포가 달라, 소감공파는 전남 화순, 오한공파는 전남 강진·영암·해남, 문원공파는 전국 고르게 경북 예천과 전북 장수, 밀직공파는 충남 부여·공주·천안과 대전, 함양군파는 경북·경남 의성·청도·대구·경산·청송 등에 많다고 소개됩니다. 그 밖에 경기 시흥·의왕·평택, 경남 거창·산청·함양, 경북 문경·상주·예천 등 전국에 집성촌이 있습니다.
중시조 박선의 현손 박신유(朴臣蕤)는 고려 고종 때 김경손과 함께 나주에서 이연년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응천군에 봉해졌습니다. 그의 여섯 아들 지문·지빈·지량·지수·지온·지영이 각각 파조가 되어 이를 '육지파(六之派)'라 부릅니다. 고려 후기에는 충숙왕 때 문과에 급제해 만권당에서 이제현 등과 교유한 박충좌(1287~1349)가 찬성사·판삼사사를 지내고 함양부원군에 봉해졌으며, 홍건적의 난 때 공을 세운 무신 박인계도 알려져 있습니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는 68~69명으로 소개됩니다. 태종 때 병조판서와 형조판서를 지낸 박습(?~1418)은 세종 때 강상인의 옥사에 연루되어 세상을 떠났으나 세조 때 복권되었습니다. 퇴계 이황의 제자로 알려진 박대립, 임진·병자 양란의 의병장으로 알려진 박승원 등도 함양 박씨 인물로 소개되나 상세 행적은 공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육지파인 소감공파(박지문)·문원공파(박지빈)·함양군파(박지량)·밀직부사공파(박지수)·어사공파(박지온)·중랑장공파(박지영) 외에 오한공파(박성건)·영상공파(박경)·지평공파(박번)·지밀직공파(박문재)·부윤공파(박원택)·판서공파(박규) 등이 소개됩니다. 일부 파는 월영당공파처럼 항렬표만 확인되기도 하며, 파조의 세대는 공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항렬은 파마다 다릅니다. 소감공파는 31세 해(海)·영(永), 문원공파는 27세 주(周)·균(均), 밀직공파는 29세 희(熙)·용 등으로 시작하는 표가 소개되나 원자료의 표기가 불완전해 대응이 불확실하므로 대종회 자료로 확인해야 합니다. 종친회 URL은 공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함양 박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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