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열 남궁씨 족보·가계도 온라인으로 만들기

함열 남궁씨(咸悅 南宮氏) —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함열읍 일대를 본관으로 하며, 고려 초 대장군으로 여진족을 물리친 공으로 감물아(함열)의 백에 봉해졌다고 전해지는 남궁원청을 시조로 하는 성씨입니다. 한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복성(두 글자 성)으로 알려져 있으며, 독립운동가 남궁억이 대표 인물로 꼽힙니다.

인구 — 약 21,308명 (2015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함열 남궁씨란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함열읍 일대를 본관으로 하며, 고려 초 대장군으로 여진족을 물리친 공으로 감물아(함열)의 백에 봉해졌다고 전해지는 남궁원청을 시조로 하는 성씨입니다. 한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복성(두 글자 성)으로 알려져 있으며, 독립운동가 남궁억이 대표 인물로 꼽힙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함열 남궁씨 인구는 약 21,308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남궁씨라도 본관(함열)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주요 파(派)

지평공파, 승지공파, 대사성공파

지평공파 (砥平公派)

지평공파는 남궁개(南宮愷, 1517~?)를 파조로 한다고 디지털도봉문화대전에 소개됩니다. 남궁개는 남궁찬의 손자이자 남궁익의 셋째 아들로, 1540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경기도 지평현감을 지냈으며(지평공이라는 이칭이 여기서 유래), 묘는 서울 도봉동 함열 남궁씨 제1묘역에 있다고 합니다. 그의 후손이 여러 지역으로 흩어져 살면서 7파가 형성되었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파의 갈래와 세계는 문헌·문중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족보로 확인하세요.

승지공파 (承旨公派)

승지공파는 승지를 지낸 18세(시조 기준) 남궁회(南宮恢)를 중시조로 한다고 디지털도봉문화대전에 소개됩니다. 그의 셋째 아들 이조참판 남궁급(1577년 출생)이 도봉 문중의 개조로, 임진왜란 이후 도봉동에 터를 잡았다고 하며, 서울 도봉구 일대 남궁씨의 약 90%가 그 후손이라는 설명도 있습니다. 이 문중은 '승지공파 도봉 문중회' 또는 '양주 문중'으로 불립니다.

파의 갈래와 세계는 문헌·문중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족보로 확인하세요.

대사성공파 (大司成公派)

대사성공파는 성균관 대사성을 지낸 것으로 전해지는 남궁침을 파조로 본다는 설명이 일부 자료에 있습니다. 다만 위키백과의 남궁침 항목에는 이 내용이 나오지 않는 등 자료마다 서술이 달라, 파조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파의 갈래와 세계는 문헌·문중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족보로 확인하세요.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대표 인물

남궁원청(고려 시조·대장군), 남궁민(고려 문신), 남궁계(조선 초 관료), 남궁찬(조선 강원도관찰사), 남궁숙(조선 관찰사), 남궁침(조선 한성부판윤), 남궁집(조선 대사헌), 남궁옥(조선 서화가), 남궁억(독립운동가)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시조와 본관 유래

함열 남궁씨(咸悅 南宮氏)는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함열읍 일대(옛 함열현)를 본관으로 하며, 고려 초의 남궁원청(南宮元淸)을 시조로 모십니다. 자료에 따르면 남궁원청은 961년(광종 12) 감물아현(甘勿阿縣, 지금의 함열 일대)에서 태어났고, 비서랑 등을 지낸 뒤 성종 때 대장군으로서 여진족의 침입을 막아 압록강(또는 백두산) 밖으로 몰아낸 공으로 문하시중평장사에 올라 감물아의 백(伯)에 봉해졌다고 전해집니다. 991년(성종 10)의 일로 적는 자료가 많지만 책봉 시기를 994년으로 적는 자료도 있어 연대는 문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감물아는 통일신라 경덕왕 때 함열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이때부터 함열이 남궁씨의 관향이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본관 이름은 익산시 함열읍이 이어받고 있습니다.

한편 함열 남궁씨 시조 묘정비에는 이 성씨의 원조를 주나라 사람 남궁수(南宮修)로 적고 있습니다. 남궁수가 기자(箕子)와 함께 조선으로 건너와 사도(司徒)를 지냈다는 전승이지만, 이를 뒷받침할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아 전설에 가까운 이야기로 보는 것이 안전합니다.

남궁이라는 복성의 유래

남궁(南宮)은 두 글자로 된 복성(複姓)으로, 한국에서는 인구가 가장 많은 복성입니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으로 21,308명이며 성씨 인구 순위 91위로 소개됩니다(두 번째로 많은 복성은 황보). 중국 쪽 설명에 따르면 남궁씨는 본래 주나라 왕실과 같은 희성(姬姓)에서 갈라졌고, 은나라 때 남쪽 궁궐에 살았던 데서 '남궁'을 성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도시조로는 주 문왕을 섬긴 신하 남궁괄(南宮适)이 거론되는데, 그는 문왕의 사우(四友) 중 한 사람으로, 무왕을 도와 주나라 건국에 공을 세웠다고 전해집니다(공자의 제자이자 사위인 남궁괄과는 동명이인으로 구분됩니다). 다만 한국 남궁씨와 이들의 직접적인 계보 연결은 입증된 바 없습니다.

같은 한자 '南宮'을 쓰는 일본의 성씨(이와테현 유래라고 합니다)는 한국 남궁씨와 관련이 없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식 성으로 오인되어 창씨개명을 하지 않고 넘어간 경우가 많았다는 이야기도 전합니다.

세계(世系)와 세대 수의 차이

시조 남궁원청 이후의 세보는 실전(失傳)되어 정확한 계보를 확인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후손 남궁득희(南宮得禧)를 중시조이자 1세조로 삼아 세계를 잇습니다. 다만 익산문화대전은 '남궁득희'와 '남궁득의' 두 가지 표기를 함께 쓰고 있어 이름 표기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세대 수는 기준에 따라 크게 달라지므로 주의가 필요합니다. 위키백과는 중시조 득희를 1세로 세어 남궁계를 6세손, 남궁찬을 9세손, 남궁숙을 10세손, 남궁침을 11세손으로 적는 반면, 강원도민일보(2003) 기사는 시조를 1세로 세어 남궁계를 13세손, 남궁찬을 16세손, 남궁억의 아버지 남궁영을 29세손으로 적습니다. 두 방식의 차이는 약 7세대입니다. 족보와 문중마다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의 세수는 반드시 족보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구와 세거지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남궁 성씨는 21,308명으로 집계되었고, 함열 남궁씨만을 따로 집계한 디지털익산문화대전·위키백과 자료에는 20,715명으로 나옵니다(수치가 조금 다른 이유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지역별로는 경기(6,858명), 서울(4,873명), 인천(1,985명), 강원(1,526명), 전북(1,437명), 충남(1,193명), 대전(804명) 순으로 많은 것으로 소개되며, 전북 안에서 익산 거주자는 534명입니다.

대표적인 집성촌 또는 세거지로는 전북 익산시(함열읍 주변, 성당면 일대), 서울 도봉구(도봉동·방학동·쌍문동·창동 일대), 강원 홍천군 서면 모곡(보리울)과 춘천시, 경기 가평군 청평면, 충남 공주시와 부여군 등이 꼽힙니다. 집성촌이 대체로 내륙에 몰려 있어 해안 지역에서는 보기 드물다고 합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함열현 성씨 조에는 남궁씨가 토착 성씨의 하나(남궁·조·장·염·박·김·임)로 기록되어 있다고 전합니다.

고려 시대

고려 시대 함열 남궁씨의 중심 인물은 시조 남궁원청과 중시조 남궁득희의 증손 남궁민(南宮敏)입니다. 남궁민은 1336년(충숙왕 복위 5) 문과에 장원급제했다고 하며(강원도민일보는 1335년으로 적음), 보문각 직제학 등을 거쳐 최종 벼슬은 간의(대부)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1347년(충목왕 3) 정치도감이 설치되자 정치관에 임명되어 경상도에서 민호와 토지를 조사했으나, 친원 세력을 구속한 일로 원나라의 반발을 사 장형을 맞고 문책을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강원도민일보 기사는 이 밖에 9세손 남궁신이 충숙왕 때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냈고 1342년 조적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일등벽상공신이 되었다고 적고 있으나, 다른 자료에서는 확인하지 못해 참고로만 소개합니다.

조선 시대

조선 전기에는 남궁계(南宮啓)가 문음으로 출사해 1401년(태종 1) 좌명원종공신 3등에 책록되었고, 세종 대에 한성부윤·경주부윤 등을 거쳐 중추원부사에 이르렀으며 1446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가 태종에게서 도봉산 일대를 사패지(식읍)로 받은 것이 후손들이 도봉 지역에 자리 잡는 기반이 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있습니다.

이어 남궁찬(南宮璨)은 1477년 생원시 장원, 1489년(성종 20) 식년 문과 급제 후 홍문관 교리·부응교, 제주목사를 거쳐 1504년 강원도관찰사를 지냈습니다. 그의 아들 남궁익(현감), 남궁숙(南宮淑, 1491~1553, 황해·전라·함경도관찰사), 그리고 손자 남궁침(1513~1573, 한성부판윤·형조참판)이 이어 현달하며 가문이 크게 일어났다고 전합니다.

17세기에는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 남궁집(南宮鏶, 1601~1668)과 남궁옥(南宮鈺, 1620~1699)이 알려져 있습니다. 남궁집은 대사헌·대사간을 지내며 1660년 붕당의 폐단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고, 남궁옥은 글씨와 문장, 특히 속필로 이름이 높았다고 합니다. 익산문화대전은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를 15명, 무과 급제자 5명, 생원·진사 합격자를 50명으로 소개합니다.

근대와 남궁억

근대의 대표 인물은 독립운동가 한서 남궁억(南宮檍, 1863~1939)입니다. 황성신문 사장(1898)으로 언론 활동을 했고, 1907년 대한협회를 조직했으며, 말년에 강원도 홍천 모곡으로 내려가 학교와 교회를 세우고 무궁화 묘목을 길러 보급했습니다. 1933년 이른바 십자가당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고 1939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밖에 시인 남궁벽, 제헌국회의원 남궁현 등이 근현대 인물로 소개되는데, 이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번 자료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파(派) 개요

함열 남궁씨는 참봉공파·교리공파·대사성공파·지평공파·연안공파·승지공파·모현공파의 일곱 파로 나뉜다고 디지털익산문화대전과 디지털도봉문화대전은 설명합니다. 다만 두 자료 모두 각 파의 파조(派祖)는 적고 있지 않으며, 확인되는 것은 다음 정도입니다. 지평공파는 남궁찬의 손자 남궁개(1517~?, 현감)를 파조로 한다고 하고, 승지공파는 18세(시조 기준) 남궁회를 중시조로 하며 그의 셋째 아들 남궁급을 개조로 하는 도봉 문중이 알려져 있습니다. 대사성공파는 남궁침을 파조로 보는 설명이 있으나 일부 자료에 그치며, 나머지 파의 파조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파의 계통은 자료마다 달라 정확한 소속은 족보나 대종회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유적과 묘소

익산시 성당면에는 남궁찬의 묘와 묘 앞의 석물이 있으며, '남궁찬묘석상(南宮璨墓石像)'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76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익산시 금마면 신용리 도천마을에는 효열각이 있다고 합니다. 서울 도봉구 도봉동 산86 일대는 함열 남궁씨 묘역으로 알려져 남궁숙·남궁개의 묘가 있고, 도봉산 일대 약 13만 평이 종중 재산으로 남아 있다고 전합니다. 도봉서원 경내에는 후손 남궁복을 기리는 기념비가 있으며, 아들 남궁련이 서원 복설에 기여했다고 합니다. 홍천군 서면 모곡리에는 남궁억의 묘역과 한서 남궁억 기념관이 있습니다.

종친회·항렬

함열남궁씨 대종회가 운영되고 있으며(namgoong.or.kr), 1997년 설립된 화암장학회가 해마다 후손에게 장학금을 지급한다고 소개됩니다. 항렬은 외자 이름에 오행(木→火→土→金→水)을 따르는 방식이 통용되어 왔다고 합니다. 위키백과의 대동항렬표(중시조 기준)는 30세 동(東), 31세 광(光), 32세 주(珠), 33세 종(鍾), 34세 승(承), 35세 억(檍), 36세 현(炫), 37세 용(墉), 38세 련(鍊), 39세 원(源), 40세 수(秀), 41세 명(明), 42세 기(基), 43세 옥(鈺), 44세 영(永)으로 적고 있으나, 원문에서 35~39세 글자가 깨져 있어 추정이 섞여 있습니다. 문중과 파마다 다를 수 있으니 족보로 확인하세요.

우리 함열 남궁씨 가계도, 이렇게 만드세요

  1. 나부터 등록 — 로그인하면 나만의 트리가 생깁니다. 본인 이름·생년·본관(함열)을 입력합니다.
  2. 윗대 올리기 — 부모·조부모를 추가합니다. 정확한 확인은 제적등본으로 조상 찾기를 참고하세요(보통 5대까지).
  3. 형제·자녀 연결 — 항렬(돌림자) 순으로 정렬하면 세대가 한눈에 정리됩니다.
  4. PDF·공유 — 완성한 가계도를 PDF로 저장하고 가족을 초대해 함께 관리합니다.
함열 남궁씨 족보·계보도를 온라인으로. 종이에 그리다 지우지 말고, 무료로 시작해 계보를 세대별로 자동 정리하세요.

함께 보면 좋은 글

가계도 무료로 그리는 법온라인 족보 만들기 단계별 가이드 본관·파·항렬 완벽 정리뜻과 세대 정리법

함열 남궁씨 종친회

🔗 함열남궁씨 대종회

다른 파·문중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 함열 남궁씨 족보·가계도 정보 추가/수정 요청하기무료로 족보 시작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