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공 安㺬

임진왜란 때 김시민의 진중에서 공을 세운 학자, 호 오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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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조선 중기
본관광주 안씨

생애 약력

안공(安㺬)은 조선 중기의 학자로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대지(待之), 호는 오휴당(五休堂)이며 밀양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참판에 추증된 안광소이고 어머니는 고성 이씨로 참의에 증직된 이교의 딸입니다.

처음에 안여경(安餘慶)에게 글을 배우다가 뒤에 장현광을 사사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남병사 김시민의 진중에 들어가 많은 공을 세웠고, 그 공으로 군기시부정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습니다.

경전 연구에 힘썼고 특히 『심경』과 『소학』을 좋아했습니다. 서당이 전란으로 파괴되어 학생들이 배울 곳이 없자 동지를 모아 서당을 지어 교육을 권장했고, 향사당을 짓고 조약을 만들어 권학 규칙을 세웠습니다. 『주자가례』에 우리나라 선현의 논설을 더한 『가례부체』 6권, 『오현전』 1권, 우리말과 중국 한자말을 연구한 『자해』 2권을 지었으며 문집 『오휴당집』 2권이 있습니다.

진주성을 지킨 김시민 휘하

김시민은 1592년 진주성 전투를 이끈 장수로 알려져 있습니다. 안공이 그의 진중에 들어가 공을 세웠다는 기록은 선비가 의병과 군무에 참여한 사례입니다. 군기시부정이라는 관직에 임명되고도 부임하지 않은 점은 안민학이 사도시첨정을 사양한 것과 비슷한 처신입니다.

서당과 향사당, 저술

전란 속에서도 그는 교육을 놓지 않았습니다. 파괴된 서당 대신 새 서당을 지어 학생들이 배울 곳을 마련하고 향사당과 조약으로 권학의 규칙을 세운 일은 지방 선비의 모범으로 평가됩니다. 『가례부체』는 『주자가례』에 우리나라 선현의 논설을 보탠 책이고 『오현전』은 다섯 현인의 전기, 『자해』는 우리말과 한자말의 연구서로 선비들의 학문에 자료가 되도록 했습니다.

그는 선비들의 분경(권세가에게 줄을 대는 일)을 이단보다 더 큰 해로 여겨 평생 권귀의 문전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묘소

묘소 위치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안공 자주 묻는 질문

안공의 호는 무엇인가요?

오휴당(五休堂)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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